[오늘 본 옛 그림] (91) 두레의 꿈이 피는 들판 기사의 사진

일이 놀이가 되는 삶은 얼마나 복된가. 단원 김홍도가 그린 ‘벼 타작’은 보람찬 대동사회의 바탕이 선하다. 삼복의 땡볕 아래 여문 나락은 옹글고, 거두는 자의 기쁨은 푸지다. 알곡을 터는 농군의 일머리가 손에 잡히고 가을걷이의 성취감이 벅차게 드러난다. 노역의 고단함이 사라진 자리에 일손 놀리는 신명이 절로 피어난다.

일감을 나눈 사람들의 낯빛이 어떤가. 하나같이 웃는다. 지게를 진 맨상투 사내는 등짐이 외려 가든하고, 더벅머리 총각은 볏단을 힘껏 내리친다. 개상에서 이삭을 훑어내는 사내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 가락을 맞춘다. 고깔 차림은 머리 숙여 헤식은 웃음을 날린다. 태질을 하다 실수로 새끼가 풀렸는지 무릎으로 아랫단을 누르며 매듭을 고친다. 농군들이 보여주는 낙천성이 놀라운데 마음먹이는 늘 정겹다.

중년은 흩어진 낟알을 비질해서 모은다. 마무리를 맡은 그에게 좌장의 음전함이 있다. 볏가리 위에 삿자리를 펼친 채 장죽을 꼬나문 갓쟁이는 팔자가 늘어졌다. 감농(監農)하는 마름이 혹 아닐까. 태평스러운 표정을 보건대 일꾼에게 강짜를 놓거나 패악을 부릴 심산이 아니다. 타작이 끝나면 술병에 남은 막걸리 한 잔씩 나눠 마실 맘 씀씀이가 그에게 있을 터.

화가가 표현한 농촌의 일상은 소박하고 활기차다. 일하는 자의 기꺼움이 그림 구석구석에 녹아든다. 삶을 긍정하는 넉넉한 배포 덕분이다. 결실은 자연의 힘이고 수확은 인간의 몫이다. 그리하여 가을은 자연과 인간이 품앗이하는 철이다. 오곡백과 익는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너와 내가 고루 풍성한 가을 들판, 두레의 염원이 그곳에서 피어난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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