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골잡이가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월드컵 예선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축구 시합을 보았습니다. 한국 팀이 2대 1로 승리했습니다만 답답했지요. 오히려 UAE가 앞선 축구를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쓸데없는 드리블을 하지 않았고 패스도 뒤나 옆이 아닌 앞으로 했습니다. 게다가 거의 원터치 전진 패스였지요. 득점도 세 번에 걸친 반 박자 빠른 전진 패스로 순식간에 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여전히 의미 없는 긴 드리블, 중앙으로 볼을 올리고 보자는 ‘뻥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점유율이 월등히 높고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결정적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이 경기를 보면서 골잡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전략, 전술이 요구되지만 역시 골을 넣어야 승리할 수 있으며 골을 넣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슛을 마지막 패스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기를 보니까 그 정도 수준에 오르기는 무리로 보입니다. 뒤 아니면 옆으로 하는 책임회피성 패스가 좀처럼 고쳐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게르트 뮐러라는 서독 축구 선수가 있었습니다. 1970년 월드컵 득점왕에 올랐던 그는 서독 국가대표로 62경기에서 68골을 넣었고 독일 리그에서는 438골을 기록했습니다. 1경기당 0.87골 정도를 넣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주 공격수인 박주영은 2005년부터 국가대표 경기에 나서 56게임에서 22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도 물론 대단하지만 제가 이 선수를 기억하는 이유는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어슬렁거렸던 모습 때문입니다.

뮐러는 별로 키가 크지도 않았고 주력이 좋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이 선수의 특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기록으로도 알 수 있는 득점력이었습니다.

많이 뛰지도 않습니다. 페널티박스를 자신의 집으로 아는지 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볼이 근처에 오면 기막히게 자리를 잡고 일단 공을 잡으면 순식간에 슛을 날렸습니다. 머리로도 넣고 가슴으로도 넣고 하여간 골을 넣었습니다. 이 게으른 천재는 얼핏 보기에는 무능한 선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시무시한 ‘폭격기’였던 것이지요.

빠르고 패스력이 뛰어나고 슈팅까지 좋은 선수를 찾는 것도 좋지만 골을 넣는 골잡이를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게으르고 느려 보이지만 동물적 감각으로 골을 넣는 선수가 있어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미드필드를 누비면 뭐 합니까. 골로 결정짓지 않으면 지루하고 헛된 움직임일 뿐입니다. 한국의 게르트 뮐러를 기다립니다.

탁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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