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秋色의 춘당대 기사의 사진

창덕궁 영화당(暎花堂) 지붕에 가을 햇살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소슬바람은 기왓장을 어루만진 뒤 솔숲으로 사라졌다. 고궁의 후원은 적요하다. 영화당에 걸린 선조의 어필에 가을의 우수가 담겼다. “遠客坐長夜 雨聲孤寺秋 請量東海水 看取淺深愁 나그네는 긴 밤을 지새우고, 외로운 절에서 빗소리 듣는 가을 밤, 동해의 물을 재어 보련다, 내 근심과 어떤 게 더 깊고 얕은지.” 당나라 시인 이군옥(李群玉)의 시 ‘遠客’을 적었다.

영화당에는 왕들의 출입이 잦았다. 이런저런 행사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과거시험과 활쏘기, 종친이나 군신 간의 회식이 영화당 앞마당인 춘당대에서 열렸다. 고전소설 ‘춘향전’에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한 곳이고, 당시 시제가 ‘春塘春色古今同’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정조가 꼽은 ‘上林十景’ 가운데 하나가 ‘暎花試士’, 즉 영화당에서 시험 보는 선비들의 모습이다. 당사자들이야 가슴 졸이는 일이로되, 임금의 눈에는 그리 비친 모양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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