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송병구] 십년 건축, 백년 자랑 기사의 사진

가을 하늘 아래 모처럼 시골잔치가 흐뭇하다. 아름드리 은행나무 아래 멍석마당이 펼쳐졌고, 무쇠솥마다 뜨거운 김이 올랐다. 천안 삼거리에서 가까운 어느 시골교회 입당식 풍경이다. 여섯 명으로 구성된 시골 아이들의 현악반주가 소박하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가 눈부셨다. 높고 푸른 하늘,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마을 어귀는 동네잔치를 알리는 자랑으로 그득하였다.

입당예배는 남달랐다. 검은 양복 깃에 꽃을 단 축사객들도 없었고, 모모한 인사들에게 건네는 감사패들도 없었으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음향과 영상 비용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다만 새 예배당 안에서 첫 성찬을 받았고, 동네이장님의 겸사 투성이 인사말씀이 있었으며, 새 예배당에 대한 찬사가 넘쳐났다. 예배당을 짓는데 꼭 10년이 걸렸고, 그만한 호기심 끝에 열린 입당식이니 누군들 한마디씩 안 하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시골교회의 국보급 예배당

한옥으로 올린 이층예배당은 10년 전에 터를 놓았기에 이미 대들보에선 연륜이 묻어났다. 오래오래 집을 지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 지은 까닭이다. 아마 목수 예수를 흉내 낸 듯 한 젊은 목회자는 20년 전에 고향 근처에 내려와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는 목수 솜씨를 익히고, 10년 품을 팔아서, 온몸을 드려 정성껏 예배당을 지었다. 겸손하게 배우고, 홀로 일하였으며, 나직이 기도하였다.

마을의 대목수 노인을 스승 삼아 한 수 한 수 나무 고르는 법, 나무 다루는 법, 나무 다듬는 법을 느끼면서 세운 첫 작품이 지금껏 예배당 겸 살림집으로 사용하는 너와집이다. 그리고 다시 도전한 예배당은 밑돌부터 대들보, 서까래, 흙벽, 기와, 마루, 문짝까지 직접 만지다보니 꼭 10년이 걸린 것이다. 그 규모와 정교함을 보면 십년 세월도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다. 목수 아닌 목사 자신은 얼마나 까마득했을까?

게다가 시골 교회에 여유있는 건축비가 있을 리 없다. 으레 교회건축을 하면 대지나 청사진의 건물을 담보 잡혀 큰 비용을 융통하게 마련이다. 얼마가 되었든지 금융비용 없이 건축하는 교회는 드물다. 그런데 이 교회는 농민들이 쉽게 빌릴 있는 농협 빚조차 사양했다.

몇 해 전, 어느 도시교회가 예배당을 둘러보고 건축비 지원을 제안했단다. 단, 그 교회의 지교회로 간판을 바꿔 다는 조건이었다. 당연히 거절하였다. 그런 자존감 없이 10년 세월을 예배당 건축에 헌신할 수 있었을까? 다행히 그 뜻에 공감하는 도시교회 청년들이 틈틈이 찾아와 나무를 다듬고, 흙벽돌을 찍는 일에 동참하였다. 아예 몇 달씩 살며 노동을 배우는 젊은이도 있었다.

거룩한 공간문화 고민해야

단비교회는 동네 수준의 가난한 예배당이 아니라, 적어도 100년을 내다보고 성전을 지은 셈이다. 그 결과 시골교회 예배당이 국보급 보물처럼 세워졌으니 구경꾼마다 입 안에 침이 마를 만하다. 단비교회 덕분에 모처럼 교회의 존재감을 느낀다. 정훈영 목사가 빚은 한옥예배당은 ‘공간의 경건’이 지닌 의미를 세상에 보여줄 것이다.

그동안 시류를 쫓아 온 교회는 얼마나 성급했던가. 철 지난 유행옷을 흉내 내기보다, 미련할 만큼 고집스런 그 수고는 얼마나 거룩한가. 2층 한옥예배당은 마치 21세기 세한도(歲寒圖)처럼 느껴진다. 그 모습이 한국적 지혜와 풍류를 닮아 더욱 정겹다. 이제 교회도 새로운 집짓기를 고민할 때이다. 자체로 문화가 되고, 창조를 누리는 그런 기쁨을 회복해야 한다.

송병구 색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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