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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 오늘, 쉰이 되었다


이면우 (1951~ )

서른 전, 꼭 되짚어 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리고 만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도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가 속맘으로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소리 내어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라고 두 번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터는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 그릇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중학 졸업의 이면우 시인은 대전의 작은 공장에서 홀로 시를 쓰던 보일러공이었다. 시를 끄적대는 그를 눈여겨본 사장이 시를 쓰라고 그에게 휴가를 주었다. 휴가를 마치고 그는 한 권 분량의 시를 들고 나왔다. 이 시편들은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종내는 문단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는 2000년대 최고의 노동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자는 나이 50에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지만, 만나는 사람에게 따끈한 국밥 한 그릇씩 대접하고 싶다는 이 가난한 시인의 깨달음 또한 공자의 그에 못지않다 할 것이다.

임순만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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