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한 달가량 만에 전 세계로 확산됐다. 15일 미국과 아시아 중남미 유럽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80여 개국, 1500여개 도시에서 유사한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됐다.

가장 과격한 양상을 보인 곳은 이탈리아 수도 로마였다. 10만여명(주최 측 추산 20만명)이 거리에 나선 로마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국방부 청사 별관과 도로변에 세워진 차량에 불을 지르거나 은행 점포의 유리창을 파손해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진압에 나섰으며, 이 과정에서 최소한 1명이 부상했다. 로마 시위에 참가한 이들은 이탈리아 전역의 약 80개 도시에서 기차와 버스 750대를 이용해 모여들었고, 볼로냐에서도 경찰과 시위대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8000여명의 시위대가 금융 중심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 청사 앞에서 세계 금융시스템의 부당함과 은행 권력의 과도한 집중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도 4만여명이 시위에 나선 가운데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집무실 앞에서 1만명이 행진했다. 영국 런던에서는 5000여명의 시위대가 ‘런던증권거래소(LSX)를 점령하라’ 시위에 참여했고, 소셜네트워크인 페이스북을 통한 온라인 시위에도 1만5000여명이 참여했다.

특히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도 시위에 참가해 시위자들을 독려했다. 어산지가 이날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 주변에 집결한 시위대 앞에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내자 시위자 약 800명이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그는 “영국의 은행들은 부패한 돈을 받아낸다”고 비난하며 “이것이 내가 ‘런던 점령 시위’를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DC를 점령하라(Occupy DC)’ 집회가 열린 미국 워싱턴DC 맥피어슨 광장에서 만난 헬렌 테일러(23·여)는 “(사회 현상에) 분노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말부터 워싱턴DC에서 직업을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입사 지원서를 20여 곳에 냈지만 연락이 없다. 경제가 너무 안 좋다. 그런데 뉴욕 월가로 대표되는 부유층 1%의 부(富)는 점점 더 커져가기만 한다.”

시위의 ‘발상지’인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 광장에서도 6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금융기관의 탐욕과 자산배분 불평등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이날 월가 시위의 진원지인 남부 맨해튼 주코티 공원을 출발해 월가 인근에서 행진을 벌였으며 오후 5시부터는 타임스스퀘어로 속속 몰려들었다.

반월가 시위는 이번 주말 시위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우선 지도부가 없는 데다 목표도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금융 자본주의의 탐욕을 규탄하고 서민들의 고충과 불평등을 고발하면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왔으나 이제 공감하는 이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나치당, 공산당 등도 지지성명을 발표하는 등 시위의 순수성이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시민운동에서 단점이 될 수도 있으나 다양한 배경을 모두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배병우 기자,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뉴욕=백상진 기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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