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92) 손 타지 않아 발랄하다 기사의 사진

음력 9월을 ‘국월(菊月)’이라 한다. 진나라 처사 도연명이 9월 9일 중양절에 술이 없어 대신 국화꽃을 땄기 때문이다. 국화는 은거를 상징한다. 도연명이 숨어살면서 동쪽 울타리에 국화를 심었던 까닭이다. 그와 국화는 떼려 해도 못 떼는 사이다. 옛 그림에 노인이 국화 곁에 있으면 당연히 도연명인 줄 알았다.

국화 품종은 셀 수 없이 많다. 많은들 도연명이 설마 명품 국화를 심었을까. 야생 국화를 그는 사랑했다. 하여 문인화에 나오는 국화는 거지반 들국화다. 솜씨는 모자라도 뜻이 넉넉해야 문기가 도는데, 들국화는 야생의 일취(逸趣)를 풍겨 화가 눈에 들었다. 색깔을 두고도 말치레를 했다. 노란 국화는 ‘별이 가득한 하늘’, 자줏빛 국화는 ‘술에 취한 신선’이다.

둘도 없는 꽃 그림의 대가 심사정은 자국(紫菊)을 그렸다. 꽃술은 노랗고 꽃잎은 초록인데 자줏빛 띠를 살짝 둘렀다. 돌 틈에서 냉큼 얼굴을 내민 꽃송이들은 손 타지 않은 발랄함이 새롭다. 바위와 국화를 더불어 그리면 장수와 통하지만 화가는 그런 셈법 없이 소슬한 가을에 정을 준다. 거기에 풀벌레 한 마리를 곁들였다면 가을이 더 멋질 뻔했다. 소설가 이태준이 쓴 글에서 ‘국화 화분에 묻어온 귀뚜리 소리에 가을밤도 길지 않다’란 대목이 생각난다.

국화는 쓰임새도 많다. 꽃은 화장품으로, 꽃을 태운 재는 살충제로 쓰였다. 옛 문헌을 봤더니 웃기는 용도가 나왔다. 국화꽃을 찧은 가루가 술고래를 치료하는 데 양약이란다. 도연명은 노상 국화주를 마셨다. 그가 쓰린 속을 국화 분말로 달랬을까. 아서라, 바라만 봐도 족한 국화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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