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엄상익] 분야별 전문가를 法 공장으로 기사의 사진

“법은 도로나 다리보다 몇 십배 중요한 데 허풍쟁이들이 날뛰고 있으니…”

거리마다 선거현수막이 걸려 있다. 후보들은 자기를 뽑아주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어줄 듯이 활짝 웃고 있다. 정말 한 사람의 메시아 같은 존재가 탄생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흔든다. 어떤 말도 법이 되어야 실현될 수 있는 세상이다. 세상이 복잡하게 되면서 법이라는 매뉴얼이 없으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도록 얽혀 있다. 법이 있어야 예산이 지원되고 그 돈으로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다.

20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법의 밑바닥을 경험해 왔다. 거창해 보이던 법이 텔레비전 켜는 법이나 마찬가지로 사실은 아주 작고 단순했다. 소노 아야코라는 일본 작가의 글에 나온 법 개념이 가슴에 확 다가온다. 양로원에 가면 노인들은 하루의 많은 시간을 젖은 기저귀를 차고 있다. 현명한 간호사가 있으면 자상하게 보살펴 주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 하루에 여섯 번 정도 기저귀를 갈아주라는 규정을 만들면 인간의 심성에 기대지 않고 노인들을 훨씬 쾌적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바보라도 중간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법이다. 구약에 나와 있는 유대인들의 율법에는 생활의 매뉴얼이 많다. 그 안에는 똥 누는 법도 있다. 간단하다. 호미를 들고 천막에서 멀리 나간다. 땅을 판다. 똥을 눈다. 그리고 흙을 덮는다가 율법이다. 단순한 규정이지만 이스라엘 민족 수십만명이 이동하는 중에 엄청나게 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우리나라도 화장실법 하나만은 국회를 꼭 통과시키고 끝내겠다는 의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덕분에 전국의 화장실이 좋아졌다. 자전거법만은 책임지겠다고 결심한 의원도 있었다. 그 덕에 전국에 쾌적한 자전거도로가 생겼다. 정치인 한 사람이 작은 법 하나씩만 만든다면 우리나라는 당장에 반석 위에 올라갈 것이다. 법을 만드는 일은 섬세한 지식과 현실경험을 동반해야 하는 기술이다. 현실의 밑바닥을 세심하게 관찰한 사람들이 살아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가 기능적인 법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게 비례대표제의 전국구의원 자리다. 그런데 그 자리는 그동안 수십억원에 판매되는 부자들이 사는 상품이었는지도 모른다. 권력과 돈이 욕망을 나누기 위한 교차점이었다. 전문가로서 권력을 틀어쥔 일반 의원들을 납득시키기가 너무 힘든 경우가 있었다. 오래전의 일이다.

법을 만들어 이른 아침에 중진 정치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브리핑을 했다. 무릎을 꿇고 열심히 설명하다가 말을 중지 당했다. 듣고 있던 정치인은 “법 규정보다 우리한테 영양가 있는 게 뭐요?”라고 되물었다. 순진하게 법 규정을 설명하는 게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다른 걸 요구하고 있었다. 권력을 틀어쥔 소수의 정치꾼들이 세상을 그렇게 지배하고 있었다.

수많은 전문가 단체들이 좋은 법을 만들고도 그렇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로비라는 명목으로 돈도 바쳐야 했다. 며칠 전 국회공청회에 참석했었다. 많은 참가자들이 전문성 있는 법을 만들 비례대표제 의원 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은 점점 의미가 희석되고 있다고 했다. 지역주민의 정체성도 약하고 구청장이 주민들을 보살피는데 지역구 의원들이 25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많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제 정치권도 전문가를 의원으로 영입해 기능화해야 한다. 업계를 잘 아는 컴퓨터 전문가가 관련 규정을 만들면 그 분야의 난맥상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다. 현장경험이 풍부한 의사가 공정하고 섬세한 법조문을 만들면 의료의 질이 당장에 올라갈 수 있다. 건설 전문가가 법을 만들면 음습한 뒷돈을 없앨 수도 있다.

변호사들이 분야별 구체적 법률들을 손질해야 한다. 물론 직역이기주의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음습한 곰팡이는 이미 언론이나 소비자단체 등의 뜨거운 열기 아래서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법은 도로나 다리보다 몇 십배, 몇 백배 중요한 인프라다. 이제는 강도 없는데 다리를 놓아준다고 허풍 치는 정치꾼들을 몰아내야 할 시대가 왔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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