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없고 낯설고 인생은 부조리극… 김숨 소설 ‘노란 개를 버리러’ 기사의 사진

소설가 김숨(37·사진)의 장편 ‘노란 개를 버리러’(문학동네)는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다. 아무 의미 없는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인생의 근본적인 무의미함과 답답함, 그리고 자기 삶에서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첫 문장부터 그렇다. “꼭 열두 사람이 잠들려고 할 때, 그 여자의 꿈속에서 만나기 위해 열두 사람이 꼭. 소년이 깨어나고 있었다. 꼭 열두 사람은 꼭 열두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일어나라.”(9쪽)

소년이 들은 목소리는 아빠의 것이 아니라 끓는 주전자 소리다. 끓는 주전자 소리와 섞여서 들리는 아빠의 목소리 역시 ‘일어나라’이다. 택시 기사인 아빠가 귀가하는 시간은 늘 새벽 여섯 시다. 그런데 그날은 새벽 두 시에 귀가해 소년을 깨운다. 아빠가 소년을 깨운 이유는 엄마와 함께 집에서 키우던 노란 개를 버리러 가야 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집안을 둘러봐도 노란 개는 보이지 않는다. “노란 개가 없는데, 노란 개를 어떻게 버려요?”(15쪽)

하지만 아빠는 노란 개를 택시에 이미 실어놓았다고 대답한다. 이윽고 택시에 탄 소년은 뒷좌석에서 노란 개 대신 낯선 사내를 발견한다. “노란 개가 어디 있느냐”고 다시 묻는 소년에게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트렁크에 있다.”(19쪽)

택시가 어딜 달리고 있는지 소년은 알지 못한다. 다만 소년은 택시가 달로 가고 있다고 느끼면서 노란 개가 달에 버려지면 얼마나 울부짖을까에 골똘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노란 개는 소설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노란 개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까, 노란 개란 소년인가, 소년의 엄마인가, 혹은 낯선 사내인가. 게다가 노란 개가 왜 버려져야 하는지 그 사연도 끝내 해명되지 않는다. 노란 개란 결국 인간 심리에 자리 잡은 불안이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강동호는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는 존재는 없는 것이 아니라 없지 않는 방식으로 있는 것들, 즉 없음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익명의 대상들에 가깝다”며 “김숨의 ‘노란 개’는 바로 이러한 불안에 대한 섬뜩한 이미지들을 탁월하게 빚어낸다”고 말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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