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인간, 최후의 모습 기사의 사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카다피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절대권력자의 최후가 너무 비참했기 때문이다. 시위 군중에게 전투기로 총격 포격을 가한 악당 카다피는 고향 시르테 외곽의 한 배수구에 숨어 있다가 스물한 살 반군 청년 오므란 샤반에게 붙잡혔다. 배수구에서 끌려나온 카다피는 반군들에게 끌려다니면서 목숨을 구걸했다고 한다. 금과 현금 무엇이든 줄 테니까 살려달라고 애걸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비참하게 사살됐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황금권총은 반군 병사의 손에 들어갔고, 그의 시신은 한동안 쇼핑센터 냉동고에 전시됐다.

악랄한 살인자의 비굴한 말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카다피와 경중을 가리기 어려운 독재자였다. 쿠르드족과 시아파 등 수십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결국은 고향 티그리트 인근의 농가 흙구덩이에서 미군에게 발각돼 체포됐다. 호화로운 궁전에서 온갖 호기를 다 부렸던 그는 몸 하나 겨우 들어갈 구덩이에 누운 채 숨어 있다가 들킨 것이다. 재판 절차를 거쳤지만 그 절대 권력으로도 정작 자신의 목숨은 구해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미군에게 끌려가 입을 벌린 채 DNA검사를 당하던 TV 화면 속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두 독재자 모두 죽을 때는 고향을 찾아갔다. 거기 가면 자신의 지지자들이 있고, 그들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간 곳이 거기였을까? 그때만은 인간의 마음이 돌아왔을까? 남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이들의 경우와는 사뭇 다른 장면도 있다. 워털루의 영웅이며 정치가였던 아서 W 웰링턴 공작은 만 83세의 천수를 누렸다. 말년의 어느 날 그가 서재에서 서류를 보고 있는데 한 사내가 뛰어들어 왔다. 그 괴한은 큰 소리로 외쳤다. “각오하라!” 공작은 바위같이 앉아서 꿈쩍도 않았다.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여보게, 오늘이 아니면 안 되겠나?” 사나이는 당황한 듯이 허둥대며 대답했다. “거기까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확실히 불원간이다.” “좋아.” 웰링턴은 말했다. “그럼 조금만 뒤로 미뤄주게, 나는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말일세.” 사나이는 물러갔다. 그리고 문 밖에서 체포됐다. 그 괴한은 병원에서 탈출한 광인이었다(장수철, 세계인의 유모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

중앙일보에 실린 신재순씨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문득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생각한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궁극적 공포다.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 사람의 크기는 가늠된다.

“독재를 하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나라의 발전을 많이 이루고 국민을 위했던 분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총상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괜찮아’라고 한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의연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어요.”

신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말로는 쉽다. 그러나 죽음에 임해서도 오히려 남을 안심시키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기는 어렵다. 그냥 어려운 게 아니라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필부인가.

악랄한 살인자들일수록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치사하고 비굴하다. 그 때문에 학대를 받았던 국민의 울분은 더 솟구친다. 저 비열한 인간에게 짓눌려 지내야 했다니! 저 겁쟁이에게 숱한 이웃과 혈육의 목숨을 빼앗기며 떨어야 했다니!

독재자, 살인자들 하나하나 권좌에서 끌어내려졌다. 오직 제 한 몸의 권세와 재부만을 탐해 인민을 학대하고 학살하고 강탈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 이런 악당이 인민의 힘에 의해 밀려나고 응징당하는 것을 일컬어 사필귀정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 몇 안 남았다는 이기적 독재자들도 귀정의 순리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리고 일찍이 어느 누구도 권세와 재물을 저세상까지 가지고 갔다는 말을 들은 바 없다. 갈 때는 모든 것을, 자신의 육신까지 그 자리에 두고 가야 하는 것, 이 또한 귀정이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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