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10·26 재보선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개입’한 꼴이 됐다. 공식 선거기간 직전에 내곡동 사저 문제가 불거져 열흘 이상 논란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에선 이를 나경원 후보 ‘피부 클리닉’ 문제와 함께 양대 악재로 꼽는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완패한 26일 밤 청와대는 침통했다. 저녁 무렵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논의할 때만 해도 선거 결과에 기대를 버리지 않았으나 예상보다 큰 격차로 패하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한 참모는 “이렇게 되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더 험난해졌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정치권은 본격적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 준비에 돌입할 테고, 여권은 다음 선거를 위해 쇄신을 외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젊은 층의 뿌리 깊은 반(反)MB 정서가 확인된 마당에 그 쇄신의 방향이 이 대통령에게 유리할 리 없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현 집권세력의 확장은 안 된다”며 MB정권 심판론을 제기했다. ‘안철수 바람’이 크게 작용한 선거 결과는 그의 주장에 시민들이 공감했음을 뜻한다. 더욱이 이 대통령 지지율은 30%선까지 위협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과 최대한 거리를 두려 할 것이다. 당·청 관계 주도권은 내곡동 사저 논란에서 이미 당으로 넘어갔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선거에 뛰어들며 본격적인 대선 행보를 시작했다. ‘미래 권력’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이 대통령의 국정 영향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여권의 무게중심이 급속히 박 전 대표에게 쏠리면 이 대통령의 레임덕은 더욱 가속화된다.

측근 비리와 사저 논란 탓에 선거 패배 책임론이 이 대통령을 향할 수도 있다. 이미 이재오 의원이 사저 문제로 임 실장을 겨냥해 ‘청와대 개편론’을 제기한 상태다. 이 대통령은 분위기 쇄신용 인사를 꺼려왔지만 국정 마무리를 위한 인적 쇄신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 임 실장이 박 전 대표의 대항마로 한나라당 대선주자 경쟁에 뛰어들리란 전망도 있어 청와대에 불어 닥칠 선거 후폭풍은 예상보다 거셀 것으로 보인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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