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현길언] 조상의 족쇄, 후손의 인권 기사의 사진

“불행한 역사의 희생양들을 비난하거나 흘겨볼 게 아니라 버거운 짐 함께 져줘야”

손자는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에 군수를 지내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실을 알고 고민하다가, 가족과 의논하여 조상의 과오를 사죄하는 글을 사전 편찬을 담당했던 민족문제연구소 측에 전하였다. 연구소 측은 그 자손의 일이 너무 가상(?)하여 각종 언론매체에 알리면서 화제를 만들었다. 그 화제의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몇 년 후에 태어났다. 자라면서 집안 어른들로부터 일제시대에 군수를 지낸 ‘군수 할아버지’에 대해서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 할아버지가 친일하였다는 사실을 알고서 고민하다가 결국 사죄의 글을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더구나 인권과 역사의 진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연구소에서 할아버지 인생이 족쇄가 되어 살아가는 그 자손의 안타까운 모습을 가상하다고 세상에 알렸다는 것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우리가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였기에 왜곡되었고, 왜곡된 만큼 그 역사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도 왜곡되고 훼손되었다. 그 역사의 격랑에서 한낱 들풀에 지나지 못한 개인은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역사의 광풍에 휩쓸려 친일파도 되었고, 빨갱이도 되었고, 독재자와 그 하수인이 되어야 했던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이들은 역사의 희생양들이다.

그런데 이제 그 자손들까지 그 조상의 삶이 족쇄가 되어 부담스럽게 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역사적 비극 못지않게 또 하나의 비극이다. 행복하게 그 시대를 비켜가서 살고 있는 우리는 불행한 역사의 희생양들을 비난하거나 눈을 흘겨 쳐다볼 것이 아니다. 그들의 버거운 짊을 함께 져줄 수 있을 때에 우리 사회는 인권이 살아 있는 참된 민주사회가 될 것이다.

지난 정부 때 일이다. 대한민국의 비극은 친일파에 의하여 분단 정부가 수립된 것이라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공공연하게 폄하했던 대통령과 그 친위세력 가운데 나중에 그의 친인척이 친일인사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망연자실했던 일이 있다. 그들은 불행한 아버지의 유산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분단 상황에서 아버지가 공산주의자가 되었거나 아니면 그 추종세력이 되었던 경우에 그 후손들은 조상의 족쇄에 묶여 일생을 한스럽게 살았다.

이러한 연좌제가 얼마나 악법인지를 모두가 시인할 것이다. 이러한 악법의 검은 그림자는 단순히 법적인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조상의 인생을 그 자손이 법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문화는 반인권적이다.

이러한 사회 문화현상은 그 고통을 겪은 자들은 물론이고, 그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도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제 그러한 과거의 문제가 극복될 만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이 연좌제의 망령은 사라지지 않았으니 한심스럽다. 사라지기는커녕 음험하게 갖가지 구실을 붙여 조장하고 있다. 이번 친일파 할아버지의 죄과를 사죄하는 손자의 태도와 그것을 가상하게 생각하는 이 사회의 분위가가 바로 그러한 반인권적 문화가 음험하게 상존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조상의 인생은 그 당사자로 끝나야 한다. 그가 역적이든 충신이든 좌(左)였던 우(右)였던, 친일파였던 민족주의자였던, 독재자였던 민주투사였던 그것은 본인이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인생의 짐이다. 혹 그들의 공은 치하해 줄 수 있어도 그들의 과(過)를 그 자손에게 묻거나 따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인권 차원에서도 위배되는 일이며 사회의 통합이나 화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조상 잘 만나 호의호식하면서 그 권력을 이어받아 누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행한 조상의 업보를 그 후손이 짊어지고 살아가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조상의 삶이 그 자손에게 특권의식이나 피해의식으로 작용하는 문화는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이다.

현길언(소설가, 본질과 현상 편집·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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