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장현승] 사랑이라는 딜레마 기사의 사진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바다새 이야기를. 노나라 임금은 바다에 사는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주며 소와 돼지를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하였다.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 아니다.-장자의 바다새

사랑의 이면을 보라

노나라 임금은 바다새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까이 두고, 애정을 베풀게 된다. 좋은 술 권하기, 고기 먹이기, 궁정음악 연주해주기 등. 어리둥절한 바다새는 슬퍼하다 사흘 만에 죽는다. 이런 호의는 임금의 순수한 사랑으로 대접한 것이나 바다새에게는 괴로운 시달림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그 모든 애정 표현들에는 딜레마가 있다. 분별없이 자기 방식만을 옳다고 고집하는 애정의 표현들은 바다새처럼, 여리고 고운 인간을 죽일 수도 있다. 사랑 그 자체는 순수하다. 하지만 사랑이 품고 있는 딜레마의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이 말의 의미는 ‘더 이상 사랑일 수 없다’라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허공에 그려진 환상을 제멋대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간혹 신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바로 ‘사랑할 때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불가사의한 ‘변화와 기적’을 만들어낸다.

페르시아의 대왕 샤리아는 사랑하는 아내를 궁중에 두고 사냥을 나갔다가 잠시 돌아와 보니 왕비가 흑인 노예들과 집단으로 희롱하고 있었다. 사랑을 준 아내에게 사랑 받기를 바라는 욕망 있는 그의 사랑이 분노로 모습을 바꾸었다. 격노한 왕은 왕비와 노예들의 목을 베어버리고 여자들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매일 밤 아름다운 여자들과 동침을 한 뒤 그날로 다 죽여 버리는 것. 민심은 흉흉해지고 남아나는 아가씨도 없었다.

왕은 국무대신에게 새 처녀를 찾아오라고 명령했지만 대신은 끝내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고 자초지종을 물은 끝에 사실을 알게 된 ‘셰에라자드’와 ‘디나르자드’ 두 자매는 왕비가 되겠다고 자청한다. 재색을 겸비한 셰에라자드는 지혜를 발휘해서 왕과 동침한 후 왕에게 각 나라의 전설과 역사를 들려주며 밤을 지새우게 했고, 왕은 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어 그녀를 살려둔다. 그렇게 1001일 동안 계속 이야기를 듣게 되며 왕의 마음에 사랑이 싹트게 된다. 여자를 증오했던 왕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왕비로 맞이하였으며 이후 성군이 된다.-천일야화 중에서

욕망이 있는 사랑…

보라! 사랑은 때로 상상할 수 없는 분노로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얼음을 녹이는 불이 되었다가도, 불에도 녹지 않는 얼음으로 변하기도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살아있음의 증거다. 그렇다. 이젠 회초리 들고 몰아가는 양떼 몰이식 리더십이 아닌, 양들을 춤추게 하는 ‘예수사랑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예수의 신적 사랑은 끊임없이 주기만 하는 사랑으로 살리고자 하는 사랑이다. 욕망이 없는 예수사랑 확장은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장현승 과천소망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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