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아침의 시


원구식 (1955~)

나는 걸신들린 여우처럼 산비탈에서 야생의 돼지감자를 캐먹는다.

먹으면 혀가 아리고, 열이 나고, 몸이 가려운 돼지감자.

독을 품은 돼지감자.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든, 야생의 돼지감자처럼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삶의 줄기에 독을 품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세상을 향해 외친다. 나 돼지감자야. 어디 한번 씹어 봐.

먹어, 먹으라니까. 그러나 나는 가짜 돼지감자.

독도 없으면서 있는 체 하는 가짜 돼지감자.

우리는 모두 가짜 돼지감자. 길들은, 교육받은,

그리하여 녹말이 다 빠진, 착한, 힘이 없는, 꽉꽉 씹히는, 그러나 성난,


원구식은 소외와 불안과 상처를 다듬지 않은 날것으로 드러내는 데 뛰어난 시인이다. 유신 독재가 극성을 부리던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탑’에서 그는 ‘탑을 바라보면 무언가/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불안하고/무너져서는 안 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다’고 썼다. 강렬한 원 투 스트레이트 펀치다.

이 시 역시 그렇다. 나 독한 돼지감자야 한번 씹어 봐. 그러나 독도 없고, 혀를 아리게도 못하는 가짜 돼지감자. 문명에 순치되고, 녹말도 다 빠지고, 힘도 없이 꽉꽉 씹히고, 그러나 성질만 더러운 돼지감자…. 나약해진 수컷들을 신랄하게 겨냥한다. 이 시가 통쾌한 것은 야성(野性)을 상실해가는 도시인들의 아킬레스건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동류항(同類項)의 역설이다.

임순만 수석논설위원 soo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