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保守가 保守를 保守하는 길 기사의 사진

아들 녀석은 TV를 켰다 하면 주로 연예 오락 프로 쪽 채널이다. 기자는 교양 프로나 보라고 잔소리를 해서 녀석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곤 한다. 집사람은 기자에게 꼭 그렇게 나이 든 티를 내야만 하겠느냐고 타박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집사람의 말대로 기자가 낡은 세대라는 걸 확인했다. TV에서 연예 오락 프로보다 시사 프로나 다큐멘터리 등을 즐겨 본다면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영락없이 기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교훈

어느새 나이가 들어 젊은이들과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 됐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자신만의 성(城)을 쌓고 거기에 갇혀 젊은 세대의 사고와 행동 양태 등에서 멀어지고 시대에 뒤떨어진 구세대가 돼 있었다는 얘기다.

경제 쪽에서 주로 인용되던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비유가 요즘 정치권에서도 차용되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섬들로 다윈이 진화론의 영감을 얻었다는 곳이다. 육지와 교류가 없었던 이 섬들에선 거북이 등 고유 종(種)들은 자신들만의 성을 쌓고 그 안에서 독자적으로 살아왔다. 그러다가 육지와 교류가 이뤄지면서 외부 종이 유입되자 면역력이 약한 고유 종들이 멸종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 현상을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고 한다. 이 말은 몇 년 전 뉴욕 타임스가, 일본의 IT산업이 자신들의 기술력만 믿고 세계 시장의 흐름을 외면한 채 독자적인 표준을 고집하다가 고립된 현상을 이에 비유하면서 널리 인용되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하면서 강원택 서울대 교수가 한나라당을 갈라파고스의 거북이에 빗댔다. 한나라당이 국민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딱 들어맞는 지적이다. 그러면 누가 한나라당을 갈라파고스의 거북이로 만들었을까. 자신들만의 성을 쌓고 외부와 소통을 거부한 채 스스로를 가둔 건 물론 한나라당과 그 정권이다. 그 다음은? 자칭 보수 이데올로그(이념 이론가) 등 극우 세력들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진영(陣營) 논리와 집단 사고로 한나라당이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차단벽을 쳤다.

그들은 무상급식 확대 등 이른바 보편적 복지 정책을 모두 망국적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였다. 일부 복지 정책을 확대하려는 한나라당 내의 움직임에 대해서까지 진보 좌파의 2중대가 돼 보수 정당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젊은 세대에겐 관심 밖인 대북 정책, 이념 문제 등에 대해 지나치게 경직된 극우적 주장을 폄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사는 데 역효과를 냈다. 그들은 그 대신 보수 정권의 잘못은 애써 외면했다.

이념에서 자유로워져야

서울시장 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하자 그들은 정부 여당이 시대 흐름에 무감각했고 방종했고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 실패했다고 잡도리하고 있다. 그렇게 만드는 데 자기들이 큰 역할을 했으면서도 말이다. 그들이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서도 종전과 같은 주장을 계속하는지 두고 볼 일이다.

보편적 복지 정책이 다 옳다는 얘기를 하자는 것도, 원칙 있는 대북 정책에 반대하는 것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좌파적 이념을 옹호하자는 것도 아니다. 사실 서울시장 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한 건 때마침 불어 닥친 경제적 어려움이 젊은 세대의 분노를 야기한 데 기인한 바 크다. 그렇더라도 정부 여당이 극우 세력의 극단적 주장에서 자유로워져 복지 정책에 좀 더 적극적이었고 색깔 문제 등에서 얼마간 신축적이었다면 20∼40세대의 이반이 완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갈라파고스의 거북이가 안 되려면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걸 적절히 수용함으로써 면역력을 기르고 반대 세력의 저항을 줄여야한다. 그게 보수 세력이 보수 이념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민주 정치는 결국 민심의 흐름을 쫓을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아도 국민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건 도그마요 그에 따른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시대의 흐름과 소통하고 교류하지 않은 정당은 갈라파고스의 거북이가 되고 만다. 기자가 아들 녀석에게 연예 오락 프로 대신 교양 프로나 보라고 강권하면 낡은 세대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듯이.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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