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명희] 채찍보다 당근이 필요한 때 기사의 사진

1980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로널드 레이건은 유세 도중 재선에 도전하는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을 겨냥해 재치 있는 말을 했다.

“경기침체(recession)란 당신의 이웃이 일자리를 잃을 때입니다. 경기불황(depression)이란 당신이 일자리를 잃을 때입니다. 경기회복(recovery)은 지미 카터 현 대통령이 그의 일자리를 잃을 때입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참패 결과를 놓고 이명박 대통령은 2040세대(20∼40대)와 소통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2040세대의 민심이 레이건 유세의 마지막 부분과 같지 않았을까 싶다.

정권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에서 ‘친 서민’으로 방향을 튼 이명박 정부는 기업 옥죄기를 통해 친서민정책을 펴는 것처럼 연출하고 있다. 동반성장 실적을 내라, 수수료를 내려라, 고졸 채용을 늘려라. 매번 선거철이 다가오면 기업들은 동네북이다. 그래야 표를 끌어모으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상생해야 하고 고졸 채용을 늘려 학력 지상주의를 철폐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속성을 무시하고 자선사업 하듯 불필요한 인력을 채용하라거나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얼마를 토해내라는 식의 협박은 곤란하다. 국내 대기업들은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다. 냉엄한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과 싸워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도 만들고, 국가경제도 먹여 살릴 수 있다.

지난주 찾아간 현대자동차 체코공장은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공장이 있는 노소비체는 인구 990명의 아주 작은 도시다. 체코공장에는 현지 근로자 3300여명이 일하고 있다. 노소비체 시민을 다 고용해도 부족해 인근의 체코 3대 도시 오스트라바 등지에서 직원들을 채용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실직으로 내몰렸던 현지인들이 2008년 말 현대차 공장이 가동하면서 새 일자리를 찾았다. 이들에겐 현대차가 ‘밥줄’이자 미래 꿈을 이뤄주는 구세주다.

노소비체 시정부는 현대차에 고용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인근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무료 셔틀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현대차 공장을 유치한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는 공장 부지를 공짜로 제공하고 20년간 법인세 면제혜택에다 도로까지 깔아주면서 ‘현대로(路)’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 7월 발효된 데 이어 한·미 FTA까지 발효되면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짓는 메리트가 줄어든다. 물론 현지 생산을 하면 국내에서 수출하는 것보다 물류비용을 줄일 수 있고 현지부품 조달과 현지화 등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지는 이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FTA가 발효되면 관세가 없어져 국내에서 수출하는 것이나 해외에서 생산하는 것이나 가격차가 별로 없게 된다.

정부는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기업들 뒷다리를 잡을 것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을 안으로 붙잡아 들일 당근책을 고민해야 한다. 국내 투자가 늘고, 고용이 늘어나면 소득증가→소비증가→기업 이익 증가→기업 투자의 선순환이 저절로 이뤄지게 된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외국에 공장을 짓겠다고 하면 외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혜택 리스트’를 들고 오는데 우리나라는 ‘이건 안 되고, 저건 안 되고’ 규제 리스트를 내민다”고 했다. 기업 팔 비트는 게 친서민 정책의 능사가 아니다.

이명희 산업부 차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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