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합의 처리, 겉보기엔 그럴싸하지만 기사의 사진

한나라당이 당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처리 시한으로 잡았던 지난달 28일 국회의사당이 바라다보이는 여의도공원 앞에서 비준을 저지하기 위한 농어민결의대회가 열렸다. 단상에 오른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한·미 FTA 국회처리를 늦춰 내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하자고 목청을 높였다. 집회 참가자 중 일부는 비준 반대시위를 벌여 국회로 난입했다.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야5당 대표들은 한·미 FTA 처리 저지를 위해 공동 대응키로 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소위 야권 단일후보를 내세워 한나라당에 패배를 안긴 여세를 몰아 내년 총선까지 FTA 반대 공동전선을 끌고 간다는 속셈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대표는 마라톤회담을 통해 국내 피해보전대책 합의안과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절충안을 도출했으나 이마저 민주당 지도부가 일축했다.

한·미 FTA는 여야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비준 여부와 시기를 저울질할 수 있는 한가한 논쟁거리가 아니다.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서 자국산업을 지키려고 관세와 규제를 강화하는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이럴 때일수록 해외시장 확대에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미 FTA에 따른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미국시장을 선점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대표적 고용창출산업인 자동차 분야에서 부품업계의 가격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긴요하다. 부품업계는 FTA 발효로 미국시장에서 관세철폐 혜택을 누리게 되면 중국산과 일본산에 비해 가격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자동차뿐 아니라 그동안 중국산에 밀려 미국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섬유와 전기 전자 등 중소기업 분야에 이르기까지 협정 발효를 고대하는 형편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한·미 FTA 비준 처리를 내년 총선 이후로 늦춰도 급할 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업계 현실을 외면한 궤변일 뿐 아니라 협정을 무산시켜 양국 관계를 훼손하려는 반미책동에 이용될 우려가 크다. 한·미 FTA와 협상 책임자를 을사늑약과 이완용에 빗대 비난하고 주권침해 운운하며 반미를 선동하는 발언이 야권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반미세력은 FTA를 통해 양국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고 한·미 안보동맹이 경제동맹으로 더욱 견고해지는 것을 저지하려고 한다. 반미 선동세력들은 국제협정에 보편적인 방식인 ISD를 독소조항이라고 억지를 쓰고 전혀 현실성이 없는 재재협상을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파기를 유도하려 한다. FTA를 무산시키면 더욱 좋겠으나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해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철저하게 계산된 발언과 행동으로 한·미 FTA를 저지 또는 연기하려는 야권에 비해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상대방의 처분이나 바라는 안이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국내 피해대책을 보완하고 ISD 절충안을 마련하는 정성을 보이면 야당도 합의처리로 기울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왔다. 한나라당은 만약 강행처리를 단행했다가 자칫 여론의 역풍에 말려들면 내년 총선에서 고전을 면키 어렵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부자가 몸조심한다고 하지만 지금 한나라당은 사실 몸조심할 형편도 못된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자영업 도산과 청년실업이 줄을 잇고 어렵게 내 집을 마련한 가계는 대출금 갚기에 허덕이는 처지다. 집을 팔아 갚으려 해도 거래가 실종된 지 오래다. 여기에다 정부와 여당은 소통채널이 뒤틀어져 국민 불만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몸조심하겠다고 야당 눈치나 보다가 한·미 FTA 비준 기회마저 놓치면 그나마 남은 지지기반은 더욱 위축될 게 뻔하다. 한나라당은 지금 겉보기에 그럴싸한 합의처리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자칫 대미관계에서 실리와 신뢰를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편집인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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