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박동수] 베이비 부머와 제3의 장소 기사의 사진

#지난해 은행에서 퇴직한 지인은 한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퇴직금을 최대한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움직이면 무조건 돈이 든다’며 책과 TV만 끼고 뒹굴던 그는 그러나 오래지 않아 ‘방콕’ 생활을 청산해야 했다. 매일 집에만 있다 보니 금실 좋던 부인과 사소한 일로 다투는 날이 잦아졌다. 자녀들도 집에서만 죽치고 있는 아버지를 탐탁지 않게 보는 듯했다.

‘안되겠다’ 싶어 매일 오전 집을 나섰지만 갈 데가 없었다. 한동안은 남들처럼 열심히 등산을 다녔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돈은 별로 들지 않았지만 허구한 날 산에만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눈이 내리거나 강추위가 몰아치는 겨울엔 등산을 못하는 날이 많았다. ‘돈이 적게 들면서도 하루를 느긋히 보낼 장소는 없을까’ 고민하던 그가 찾은 곳은 커피체인점과 패스트푸드점. 4000원 정도면 신문을 읽거나 행인을 구경하며 낮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장시간 마음 편히 머물 장소는 아니었다. 손님이 밀려올 때면 왠지 눈치가 보여 마냥 죽치고 있기 어려웠다. 요즘 그는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고 다닌다.

머물곳 없는 퇴직자 쏟아져

#700만명이 넘는 베이비 붐세대가 본격 은퇴하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은 이전 세대보다 교육도 많이 받고 고령자 의식도 약하다. 나이가 더 들어도 경로당이나 탑골공원 같은 곳은 아예 갈 생각을 않는다. 이들의 소망은 퇴직 후에도 어떤 식으로든 사회와의 관련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역동적 은퇴자, 즉 ‘액티브 시니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선 머물 곳부터가 마땅치 않다. 대부분의 퇴직자들은 ‘제2의 장소’인 직장을 떠난 뒤 ‘제1의 장소’인 가정에 갇힌다. 답답하다. 그래서 매일 가볍게 들러 몇 시간이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제3의 장소’를 갈망한다. 제2의 장소인 직장은 상사 동료 부하 거래처 같은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하게 존재했다. 또 다양한 정보와 후생복리도 제공됐다. 그러다 퇴직을 하고 나면 이런 네트워크와 각종 서비스가 모두 사라진다. 이는 회사인간으로 근무해온 사람들이 퇴직 후 직면하는 큰 상실감 중 하나다.

퇴직자들의 행복한 인생 후반전을 위해선 이들이 언제든 찾아가 머물 수 있는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 이곳에서 비슷한 취미와 지적 흥미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고, 퇴직 후 필요한 생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면 삶의 질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제3의 장소가 갖출 조건을 대략 네 가지로 압축한다. 첫째, 몇 번이고 이용할 수 있게 유도하는 핵심 서비스를 갖출 것. 둘째,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 셋째, 생활에 도움되는 정보를 제공해줄 것. 넷째, 건강 유지와 교양, 개인의 기술향상 기회가 많을 것 등이다.

고령자 해법 교회에 있다

#교회가 그 장소를 제공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요즘 웬만한 교회엔 다양한 공간들이 구비돼 있다. 문화 강좌와 소그룹 모임. 세미나를 여는 많은 룸과 카페 등등. 중대형 교회들은 이런 공간의 일부를 ‘액티브 시니어’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앞으로 시니어 상대 목회는 교회 성장의 중요 포인트가 될 것이다. 퇴직하는 베이비부머들을 교회공간으로 이끌 수 있다면 교회 성장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매우 유익한 일이 될터이다. 급격한 인구구조 변동에 교회가 보다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

박동수 종교기획부장 d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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