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민주당의 운명 기사의 사진

“이리 가면 중앙정보부요, 저리 가면 보안사”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지금은 국정원과 기무사로 이름마저 바뀐 두 기관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수틀리면 아무나 잡아다 고문도 서슴지 않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 얘기다.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경우를 사람들은 이렇게 비아냥거림으로 빗댔다.

통합논의, 그들만의 리그

지금 야권 통합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민주당이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게 아닌가 싶다. 야권통합을 하면 민주당 간판을 유지하기 어렵고, 그걸 안 하면 수권 야당이라는 존재 자체를 위협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한·미 FTA 같은 국가 중대사를 제쳐둔 채 야권 통합 문제에 더 빠져 있는 것도 그것이 이처럼 그들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를 비롯해 많은 인사들은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야권 통합이 절대적 필요조건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통합의 내용이나 절차에 관해서는 생각이 제각각이다. 차기 대권을 겨냥하고 있는 손학규 대표는 민주진보진영을 아우르는 통합정당을 결성하여 12월에 민주당 전당대회 대신 신당 창당대회를 갖자며 제1야당인 민주당의 기득권도 다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권을 겨냥하고 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은 민주당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12월에 치른 뒤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야권 통합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더 깊숙이 들어가면 야권 통합으로 자신들의 공천 등 기득권을 박탈당할 우려가 있는 사람들은 손 대표가 민주당을 팔아넘기려 한다며 통합 자체를 반대하기도 한다. 이 밖에 진보 진영이라 해도 이념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어디까지를 통합의 대상으로 할지, 총선에서의 공천지분을 어떻게 할지 등 통합까지 가기에는 난제들이 첩첩이다.

그러나 기자의 눈에는 이러한 문제들을 놓고 샅바싸움을 하는 것이 자기들만의 리그로 보인다. 민주당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만 그들이 진통 끝에 어떤 결론을 내리든 그건 내년 선거 정국에서 종속 변수에 불과할 뿐 큰 흐름을 좌우할 것 같지 못하다는 얘기다.

장외의 진보적 시민세력이 너무 커버렸기 때문이다. 안철수 돌풍, 그에 따른 무소속 박원순의 등장 등으로 기성 정치권은 불신임을 받았다. 특히 서울시장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무소속 후보의 조력자로 전락한 민주당은 내년 대선 후보도 내지 못하는 불임정당 의심소견서가 나온 실정이다. 그 대신 장외 시민사회 세력은 박원순 시장을 배출한 데 이어 안철수라는 가장 유력한 대선 예비 주자를 잉태했다.

지금 국민들은 민주당이 야권 통합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거취에 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리고 안철수 교수가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인지, 출마한다면 기성 정당의 말을 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당을 만들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또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한명숙·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노무현의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역할을 할지도 민주당의 움직임보다는 더 큰 관심사이다.

바람 다시 한번 불면 꺼질 등불

이와 관련하여 박 시장은 야권 대통합이 이뤄지면 거기에 합류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간판 아래로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안 교수는 “학교 일하기에도 바쁘다”는 말로 정치입문이나 대선출마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런 안 교수 등이 총선 등 어떤 계기에 정치 전면에 부상하면 민주당 등의 야권 통합 움직임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정국 추이로 미루어 야권 통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미 불임정당 의심소견서를 받은 민주당은 집권은커녕 제1야당의 위치를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통합이 이뤄질 경우 합류할 시민사회 세력이나 진보정치 세력들이 민주당의 간판 아래 들어가는 것은 물론 제1야당의 기득권조차 인정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명맥 보전이 어려울 것 같다.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기를 포기할 때 독자생존 의지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통합으로 갈 수밖에 없고 간판을 유지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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