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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1958∼ )

이 향기

이 비 쏟아지기 전날 밤의

이 향기/ 이 향기는

나는 죽어 귀신이 된다면

잠깐 이런 향기리라

롤러스케이트장 공원

자판기 불빛에다 대고 이 글을 쓴다

오늘밤엔/ 아무도 없어/ 좋다

어둠 속엔 토끼풀

그 위엔 아카시아로군

멀리/ 붉은 네온 십자가

대명 뼈다귀 감자탕 네온 간판

“이름이 뭐냐?”

포로처럼 나는 물었다

“김영승”

나는 대답했다.


얼핏 보면 별 스토리가 없다. 그러나 이면에 흐르는 스토리는 진하다. 비 쏟아지기 전날 밤 도시의 공원에 나지막하게 깔려 있는 어떤 향기, 거기에 자신의 죽음의 냄새를 연결시키는 것부터가 그렇다. 자판기 불빛을 받아 시를 쓰는 중이라고 한다. 이런 짓은 ‘초딩’이나 하는 것이다. 다 큰 사람이 이런 짓거리를 하면 실성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럼에도 아주 개성적인 시 한 편을 내놓는다.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다. 아무도 없다. 스스로 묻는다. 너 이름이 뭐냐? 제 혼자 답한다. 김영승. 엄청난 스토리다.

마케도니아 출신인 밀코 만체브스키 감독의 영화 ‘비포 더 레인’이 생각난다. 서양세계와는 아주 가까우면서도 너무 먼 마케도니아의 닫혀진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 밤의 공원에서 피어오르는 고독과 불멸의 이야기.

임순만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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