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기선] 정당정치,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기사의 사진

“하향식 공천제도 개혁하지 않고 기득권 고집하면 국민의 신뢰 얻지 못한다”

서울시장 선거의 후폭풍으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위기의식을 느낀 여당에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둘러싼 논란과 쇄신론이 봇물을 이루고, 정치적 입지가 축소된 야당에서도 야권 대통합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정치권은 마치 이제야 민심을 알았다는 듯 야단법석이지만, 정당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불만은 선거 이전부터 이미 팽배해 있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무당파가 약 40%에 달했고, 그들 중 64.8%가 무소속 박원순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승패를 갈랐다. 박 후보가 정당 후보로 나섰더라면 본선은 물론이고 예선에서조차 당선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당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공직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고 당선시키는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여당 또는 제1야당의 공천을 받고자 희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현실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 정당의 간판이 오히려 짐이 되었다는 사실은 현재의 정당정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여론조사에서 보수신당이나 ‘안철수 신당’이 생기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들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44.1%와 40.9%였고, 한나라당 지지자의 41.1%, 민주당 지지자의 53.6%가 각각 신당에 대한 지지로 변경할 의사를 밝힌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처럼 많은 국민이 기성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실망하는 이유는 그들이 ‘국민의 행복 추구’라는 정치의 본질을 외면한 채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행태를 일삼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에 비친 그들은 정쟁에 몰두하고, 기득권 유지에 급급할 따름이다. 정치적 판단의 기초는 오직 선거에서의 유불리뿐이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이끌기보다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편가르기 정치를 하고 있다. 국민과 소통도 부족하고 진정성도 없다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의 부적절한 언행이 누적되어 정치권 전체의 불신으로 확대된 점도 적지 않다.

이런 정치 행태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고질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과거에도 정당과 정치인은 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정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진정성을 갖고 개혁해야 한다. 개혁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정치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보이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로는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외부 인사로 특별기구를 구성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내년 총선에서도 대대적인 인적쇄신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경험했듯 단순히 사람만 교체한다고 정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제17대 국회의 초선의원 비율은 63%였고, 제18대 국회에서는 44.8%였지만 정치가 달라졌다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인적쇄신은 무엇보다 국민적 시각에 입각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객관적 기준에 의해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전문성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공직자의 제1 덕목인 봉사자로서의 인품과 자질을 갖추었는지 반드시 살펴볼 일이다. 지금의 사태는 일부 정치인들이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데서 비롯된 바 크다. 나아가 국회의원이 소신껏 정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헌법 제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당에서 실시하고 있는 하향식 공천제는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국익보다 당리당략에 앞장서고, 양심이 아니라 당론에 따르도록 구속한다. 사실상 강제성을 띤 당론은 국회를 설득과 타협의 장이 아니라 투쟁의 장으로 만든다. 국회의원을 명실공히 국민의 대표,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복원시키려면 공천 과정에 국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공천제도를 개혁해야 할 것이다. 정당정치의 위기, 기득권을 버리면 정치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기선 전 중앙선관위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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