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송병구] ‘닭똥 같은 눈물’의 유전자 기사의 사진

일본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배순주. 꼭 3년 전에 일본인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우리 집에 머물며 열흘 정도 한 식구처럼 지냈다. 아이는 재일동포 4세였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해 한글 읽는 법부터 가르쳐준 기억이 새롭다. 맨 처음에 읽은 단어가 비교적 복잡한 동태찌개였다. 동네 식당 간판 이름이었다.

그렇게 배우기 시작한 단어들을 섞어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대부분은 눈치로 통했는데,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면 몸치란 없었다. 고등학생 순주는 참 정이 많은 아이였다. 공항에서 작별인사를 나눌 때 다른 일본 아이들과 달리,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홀가분하게 환송하려던 우리 가족도 모두 울었다. 오후에 일본에서 순주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순주와 종일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이젠 부자지간에 감정이 통하더라는 놀라움이었다.

공감으로만 통하는 이방인

그 감격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은 그해 가을, 재일대한기독교회100주년 행사에 참석하면서였다. 일본 오사카 여학원 웰스 채플에서 열린 예배에 일본 전역에서 100여개 교회, 1000여명의 교인들이 함께했다. 한 세기의 고난과 감사를 담아 드린 예배에서 북받치는 감정과 눈물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노란 종이꽃을 가슴에 단 초청된 인사나 재일동포 교인들이나 닭똥 같은 눈물의 감정이 서로 통했다.

3년 후 대학생이 된 순주는 한국어를 배우러 여름방학에 서울을 다녀갔고, 나도 동포들의 교회와 학교, 그리고 사람을 배우러 엊그제 간사이 지역을 다녀왔다. 재일동포는 59만여명이고, 일본 전체 외국인의 28%에 달한다. 우리는 한때 반공 드라마의 희생양처럼 그들을 보았고, 지금은 명절 특집의 생활인으로 바라본다. 물론 우토로로 상징되는 동포들의 가난과 조선학교가 겪어온 이방인들의 수난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간 재일동포는 집단명사로 취급되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고유명사로 대접해야 한다. 다행한 일은 안영학 정대세 이충성 같은 축구선수들 덕분에 단단했던 편견에 파열음이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내 경우에도 순주와 그 가족과의 만남은 개인의 존재를 일깨워 주었다. 민단과 총련 등 정치적으로만 구분할 수 없는 제3, 제4의 생활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적(籍), 일본국적, 대한민국국적 등 국적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같은 인간과 가족으로서의 특별함이었다.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 순주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 역시 자녀 키우는 일, 직장생활의 멍에, 건강과 긴장을 염려하는 비슷비슷한 고민을 지닌 어깨동갑 세대였다. 쉽게 친밀해지면서, 노래를 불렀다. 같이 불러보고 싶어 하던 그 노래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임은 오지 않고….’ 함께 부르면서 목이 메었다. 과연 그들의 기다림은 무엇일까.

저마다 품은 아픔 이해해야

종종 한과 정은 우리만이 지닌 고유한 유전자란 착각을 한다. 사실 닭똥 같은 눈물은 이 땅에 와서 살게 된 필리핀인, 인도네시아인, 몽골인, 조선족, 탈북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그들의 존재와 교회 역시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일 것이다. 바로 ‘순주들’의 역사가 이 땅에서도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그 낯선 이주자들과 낯선 교회들도 어느새 10년, 어언간 100년의 역사를 맞게 될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 모두 닭똥 같은 눈물이란 저마다의 DNA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송병구 색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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