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지우개 기사의 사진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어머니가 마련해 준 필통을 평생 잊을 수 없다. 필통에는 잘 깎은 연필 두 자루와 칼, 그리고 지우개가 들어 있었다. 플라스틱 필통을 갖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연필냄새를 맡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더욱이 지우개는 참으로 신기함을 가져다 줬다. 말랑말랑한 지우개는 냄새도 좋았지만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게 나를 신나게 했다.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리고, 아무 글이나 쓴 다음 지우고 또 지웠던 기억이 새롭다.

글쓰기가 서툴렀던 어린 시절 지우개는 잘못된 것을 지우고 깨끗하게 하는 화이트 엔젤이었다. 그런데 커가면서 언제부터인가 손에는 지울 수 없는 볼펜과 사인펜이 들려 있음을 알게 됐다. 글을 잘못 썼을 때는 볼펜으로 줄을 찍찍 긋고 그 옆에 다시 쓰는 버릇이 생겼다. 실수한 것, 잘못 쓴 것의 흔적이 남게 된 것이다. 느닷없이 지우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우개 예수

며칠 전 해오름교회 최낙중 목사님이 쓴 하나님의 지우개란 책을 읽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영사기에 필름이 돌듯 한 장면 한 장면 나의 지은 죄들이 선명하게 비춰질 때마다 부끄럽고 양심에 찔렸다. 그동안 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함이 아니요 단지 내 하소연에 불과했다. 가슴 치며 애통하며 회개하기를 새벽 네 시까지 계속했다. 지은 죄를 다 자백하자 마음에 평안이 임하더니 기쁨이 샘솟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임을 확신했다.” 최 목사는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다. 하지만 결코 누구도 과거의 일과 상처를 지우거나 돌이킬 수 없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사람을 위해 이 땅에 ‘하나님의 지우개’로 오셨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살아가면서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도 없고, 허물이 없는 완벽한 사람도 없다. 지나온 인생이 여러 가지 죄와 허물로 얼룩이 졌을 때, 이를 지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노트에 글을 쓰다가 잘못된 것을 지우개로 지우듯이 인생의 죄악과 허물을 지우개로 지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지우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우개’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만이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과 상처를 지울 수 있다.

사망의 법에서 해방

지금 한국교회의 최대 난제는 목회자든 평신도든 이 진리를 너무 자주 잊고 산다는 데 있다. 나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고 정죄하는 행동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것 때문에 분쟁이 생기고 분열되고 서로 상처 입히고 죽이고 있는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붙잡고, 주님이 주시는 용서와 사랑의 은혜로 세상을 바라보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스스로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는 지혜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예수님 안에서 죄인임을 고백할 때 우리는 용서의 도미노 현상이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다.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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