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97) 걷는 길이 사는 길 기사의 사진

장 보러 나온 여염집 부부가 아니다. 먼 길 고달프게 다리품 파는 행상이다. 아내조차 치마 걷은 바짓부리에 행전을 찼으니 부부의 하염없는 고생길이 까마득하다. 벙거지 쓴 텁석나룻 남편은 알구지 있는 지게 작대기를, 북상투 꼴을 한 아내는 헤진 지팡이를 들었는데, 등에 지고 머리에 인 나무통과 광주리가 이들의 남루한 밥줄이다.

겉차림만으로도 애잔타. 포대기가 없어 갓난이를 윗저고리 속에 업은 여자의 등은 솟았다. 저 옴팍한 광주리에 푸성귀 따위나 담지 무슨 값진 팔 거리가 들었겠는가. 매끼를 동여맨 사내의 등짐도 보나마나다. 무겁기만 한 젓갈류가 뻔하다. 걷다 말고 둘은 수런거린다. 살거리가 억실억실한 게 남편은 그나마 미덥다. 아내의 처진 목덜미가 안쓰러워 눈을 돌린다.

남부여대(男負女戴)의 지친 삶이 묻어난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가 그렸다. 김홍도의 자는 ‘사능(士能)’이다. ‘선비가 능히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맹자의 말이, 재물이 있고 없음에 구애되지 않는 것이 선비가 할 일이라 했다. 하여도 귀치 못한 백성은 먹기 위해 산다. 밥벌이의 고단함을 느긋한 선비가 알랴. 그나마 단원은 지방 역참의 우두머리와 사또를 지내봤으니 민정(民情)은 두루 살폈겠다. 풍속화에 그의 정이 소담하다.

갈아먹을 제 땅이나 있는 농사꾼은 속 편하다. 정주하지 못하고 표랑하는 행상은 신세가 처량하다. 이문 박한 장사인데 조선에서 세금은 꼬박꼬박 물게 했다. 타관살이 설움은 눌러 삼키더라도 신분사회의 뻐기는 눈총은 드셌다. 날연해진 아내를 보며 남편은 달랜다. 가자, 어서 가자, 살 길은 길 위에 있으려니.

손철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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