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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입은 ‘오빠 목사’ 문미엔 미니스트리 이성호 대표

청바지 입은 ‘오빠 목사’ 문미엔 미니스트리 이성호 대표 기사의 사진

문화·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고 형, 오빠가 되어주는 목회자. 정장 대신 비니모자에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는 목회자, 그러나 예배시간엔 온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열정적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목회자. 조금은 낯선 모습의 이 목회자는 바로 문미엔 미니스트리의 이성호(38) 대표다. 문미엔은 문화·미디어·엔터테인먼트의 준말이다. 이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선교단체다. 문미엔의 예배는 한번 시작하면 오후 9시부터 밤 12시가 다 되도록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주빌리교회에서 21일 이 목사를 만나 그의 선교 사역을 들어보고 예배도 함께 드렸다.

문미엔 미니스트리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영역에 대해 초기부터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청소년·청년 사역과 선교에 관심이 있어 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2005년부터 어떤 회사 신우회에 설교하러 갔는데 연예기획사였다. 그때 처음으로 엔터테인먼트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8년 많은 연예인들의 자살소식을 접하면서 ‘목자가 희소한 그곳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몇 해 동안 교제하며 보니까 그들의 환경이나 삶 자체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는, 그래서 이들에게 목자가 필요하겠구나라는 부담감이 생겨 아내와 기도하면서 진로를 결정했습니다.”

2009년 설립된 문미엔의 비전은 이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복음으로 섬기고 양육해 ‘그들의 관점’에 맞는 선교사적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을 복음화해 그들에게 하나님의 가치를 심어줘 그들이 만드는 모든 것에 복음 진리의 본질과 핵심을 담게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바뀌면 그들이 하는 모든 것도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저희 사역의 가장 큰 가치입니다.”

문미엔은 매주 월요일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는 영화인 방송인 CEO 연예인 등 소그룹 모임을 갖는다. 헌신자들을 모집, 제자훈련도 하고 있다. 영화감독 연예인 작가 등 40여명이 훈련받고 있다.

복음 앞에 고꾸라지다

이 목사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 살 때부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자랐다. 모태신앙으로 집안에 목회자가 10명이고 그는 아홉 번째로 안수받았다.

“모태신앙이 대부분 그렇듯 환경 때문에 교회에 나갔습니다. 안 가면 부모님이 나무라시니까 무서워서 빠질 수 없고, 또 천국은 잘 안 믿어지는데 지옥은 잘 믿어져서 교회 안 가면 지옥 갈까봐 교회는 어쩔 수 없이 열심히 다녔습니다.”

대학은 한국에서 다녔다. 2학년 때 선교단체에서 진행하는 수련회에 갔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너무 힘들었다. 이틀째부터 ‘이왕 온 거니까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예배를 드려보자’고 생각을 바꿨다. 말씀을 잘 듣기 시작하는 가운데 주님이 찾아오는 사건이 있었다.

“제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십자가, 날 위해 죽으셨다, 내가 죄인이다, 나를 사랑하신다, 뻔한 내용이었는데 그 모든 뻔한 이야기들이 제 마음에 실제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복음 앞에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인내하며 기도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하나님의 때에 거듭날 수 있었고 그 이후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수련회에 다녀온 후 세상의 쾌락적 문화를 끊었다. 인생이 단순해졌다.

유별났던 군 시절

1년 후 군대에 갔다. 사실 가고 싶지 않았으나 어차피 갈 거면 믿는 사람이고 은혜 받은 사람이니 다른 마음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나님 그러면 군대를 제게 주십시오. 제가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주님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기대감으로 들어갔으나 분위기도 무섭고 훈련도 힘들어 두려움이 찾아왔다. 6주 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갔다. 군종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가보니 부대 안에 교회가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첫날 내무반에 각 잡고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작대기 4개의 고참이 들어왔다. “신병 잘 왔다”며 담배 한 개비를 주곤 피우라고 했다. 옛날 같으면 감사히 잘 피우고 ‘도넛’도 만들어 드렸을 텐데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안 피웁니다”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발길질이 들어왔다. 권유와 발길질을 반복하다 지친 고참은 이상한 애가 들어왔다며 욕설을 퍼부으며 나갔다.

이번에는 작은 고참들이 들어왔다. 작대기 3개, 2개가 들어와 작업을 하러 나가자고 했다. 원래 신병들은 첫날 오면 작업을 시키지 않아 그냥 서 있으라고 했다. 고참 중 한 명이 낫질을 하다가 “야 분위기 이상하니까 노래 한 곡 해라”고 했다. 1년 전 “하나님 이제 제 입술에서 하나님만 찬양할게요”라고 했던 기도가 기억났다. 고민하다 눈 딱 감고 ‘기뻐하며 왕께’를 끝까지 불렀다. 고참들이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러고선 엄청난 욕설을 퍼부었다.

며칠 있다 또 부르더니 노래는 안 시키고 재미있는 얘기를 하라고 했다. 삭개오 설교를 했다. “옛날에 삭개오가 있었습니다. 근데 그분이 주님을 만나고 인생이 새로워졌습니다. 여러분도 주님 만났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절대 아무것도 안 시키는 분위기가 됐다. 그리고 1년 후 대대장까지 포함, 40명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믿지 않는 많은 고참들도 그를 좋아했고 부족하지만 그런 모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은혜가 있었다.

전 재산을 문미엔에 헌신하다

2009년 2월 1일 분당 샘물교회(박은조 목사)에서 이 목사를 문미엔에 파송했다. 그때 보통 선교사들이 하는 것처럼 교회에서 후원의 밤을 열어주었다. 수백명이 약정 후원서를 써주었다. 바로 다음 날 “사람이나 돈에 의지하지 않고 나만 의지했으면 좋겠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간사와 상의 끝에 후원해준 모든 분께 전화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문미엔은 정기적으로 후원을 받지 않겠습니다. 단지 기도하다 감동이 오시면 자유롭게 헌금을 해주십시오.”

다음 날 어떤 회사에 예배를 인도하러 갔더니 대표가 “목사님 혹시 사무실 필요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러곤 오피스텔을 새로 계약해 주었다. 지금도 월세를 내주고 있다.

문미엔의 재정은 어려웠으나 이 목사는 퇴직금과 그동안 샘물교회에서 사역하며 받은 사례금을 잘 모아둬 견딜 만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 목사 부부를 가진 재산을 다 내놓지 않아 즉사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비교하며 순교에 대한 부담감을 주셨다. “네가 순교한다 그러지 않았느냐. 가족 순교의 재물로 네가 가진 모든 재산을 받고 싶다.”

아내와 상의했더니 흔쾌히 헌금하라고 했다. 결국 문미엔을 위한 순교의 의미로 전 재산을 헌금했다. 2009∼2010년 10개월간 사례비를 한 푼도 못 받아 아들의 수술비, 다친 자신의 무릎연골 수술비, 문미엔 사역을 돕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아내의 등록금 등을 대기가 어려워졌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신기한 방법으로 공급해 주셨다. 예배도 렌트비를 내지 않고 지인이 시무하는 외국인 교회인 주빌리교회에서 드린다. 이 목사는 하나님이 재정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기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이 목사는 이제 소그룹 모임을 더욱 확장해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 이를 위해 순교의 각오로 날마다 뜨겁게 예배 중이다.

글 최영경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yk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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