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데스크시각

[데스크시각-신종수]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면

[데스크시각-신종수]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면 기사의 사진

어느 사회에서든 경쟁은 불가피하다. 기업 간, 정파 간, 국가 간 경쟁은 피할 수 없고 경쟁을 통해 성장과 발전이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를 이기기 위해 승부 자체에 집착하면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국내 라이벌에게 져 탈락한 어느 선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자기를 이기고 국가대표에 선발된 상대 선수가 국제대회에 나가 메달을 못 따기를 바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괴로워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월드컵이 열렸을 당시 한 야당 인사는 한국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대선국면에서 여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예선에서 탈락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 자체에 매몰돼 더 중요한 가치를 간과한 사례들이다. 상대가 잘하면 자기가 그만큼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에서는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제로섬 게임은 지속적인 경쟁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사회를 분열시키고 대립과 갈등을 유발한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현상이 자주 벌어진다. 상대 당이 좋은 정책을 추진해 국민 지지를 받기라도 하면 좌절감을 느낀다. 마음속으로 상대 당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좋은 정책을 내놓지 말기를 바란다. 상대 당 정책이 아무리 좋아도 트집을 잡아 깎아내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찬반양론이 있는 정책은 공격하기 더 좋다. 어떤 사안이 됐건 반대하고 공격하는 데 필요한 논리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민주당이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도 한나라당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 때 여당이었을 당시에는 자신들이 추진했던 것이지만 상대 당이 하는 것이니까 반대한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1500억원을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기부하자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분위기가 싸늘하다. 대선전략 운운하며 깎아내리기 바쁘다.

어느 사회심리학자는 우리 사회가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거시적인 사회구조는 민주화됐는데 국민들의 미시적인 심리구조는 민주화되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거시적인 사회구조의 민주화는 반쪽 민주화에 불과하고, 개개인의 심성이 민주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성품과 가치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제로섬 게임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이란 게 있다. 경쟁은 하되 상호 인정과 협력을 통해 상생하는 게임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만 상생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나보다 상대가 더 잘할 것 같으면 상대를 밀어주는 것이다. 나를 이기고 국가대표에 선발된 선수가 국제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라고, 상대 당이 좋은 정책을 내놓으면 지지해주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처럼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면 뒤끝 없이 충분히 칭찬해 주는 것이다.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어 각 당이 표를 얻기 위해 각종 공약과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 정책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정파성에서 벗어나 상대 당의 좋은 정책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아니라 더욱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궁극적인 목적을 둔다면 가능할 것이다.

정권을 잡아 자리를 차지하고, 권력을 행사하고, 재물을 모으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 정권 획득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한다면 상대 당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질 것이다. 상대 당 후보가 자기 당 후보보다 더 나라를 잘 이끌 것이라고 국민이 선택하면 기꺼이 이를 인정하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갖는 데서 민주주의가 완성된다고 본다.

신종수 산업부장 jsshi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