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아침의 시

[아침의 시] 국광(國光)과 정전(停電)


김정환(1954∼ )

어릴 적 국광 껍질 정말 타개졌는데 ‘타개지다’라는 말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 생애의 껍질로 들어섰다.

저물녘 아니 부르는 소리 들렸다. 아직 날이 어두워지지 않았는데 어두워지는, 한, 오십년 전 골목, 어머니.


국광은 사과의 한 품종이다. 푸른빛이 감도는 새빨간 국광은 겨울바람에 얼어 터질듯 발그레하던 처녀들의 뺨을 닮아 있었다. 국광을 두 손에 움켜쥔 채 반쪽으로 짝 가르면 까만 씨앗들도 절반으로 갈려 마치 연애의 심층에 들어앉은 씨방이라도 본 것처럼 으쓱해지던 시절이 누구에게든 있다. 어떤 국광은 그토록 힘을 주어도 잘 ‘타개지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건 미세한 섬유질로 직조된 사과 껍질의 장력 때문이다.

국광은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국가의 영광이나 영예를 국광이라 할진대 국가의 껍질이 두꺼우면 국민의 삶은 팍팍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 그 팍팍한 시절을 살았던 어머니가 골목길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환청으로 듣는다. 날이 저물려면 아직 멀었는데, 오십년 전 골목길엔 정전처럼 땅거미가 내리고 있다. 생애의 껍질이 되어버린 국광의 껍질, 국가의 껍질. 오늘은 국광처럼 뺨이 발그스레한 겨울의 어머니가 그립다. 단 두 행으로 사과 껍질 속 물기 많고 향기로운 시심을 한 입 베어 물게 만드는 솜씨가 놀랍다.

정철훈 선임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