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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장현승] 불편한 진실

[삶의 향기-장현승] 불편한 진실 기사의 사진

70세 노인이 법정에 선다. 죄목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이상한 이론들을 가르침으로 해서 국가 전복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당당하게 고소인들을 훈계한다. “너희 무지를 알라. 조국 아테네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은 마음을 돌이켜 정도를 지켜라.”

바로 이 노인이 세계적인 철학자 소크라테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원 2500년전,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자에 대해 델피신전에 묘사된 내용이다. ‘네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으로 인류의 배움은 시작되고, 스승의 역할은 분명해졌다.

영혼의 무게는 21g이다

‘죽음이 두렵다는 것은 마치 죽음이 삶보다 못하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것처럼 가정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지혜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죽음이 삶보다 못하다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는 없다.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다.’ 지혜로운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불멸을 믿었다. 우리 영혼이 죽지 않고 계속 살 것이며, 결코 육체와 더불어 땅에 묻히지 않는다는 것을.

1907년 매사추세츠 병원 의사 던컨 맥두걸이 놀라운 실험에 착수했다. 영혼의 무게를 재는 실험을 한 것이다. 임종 직전의 환자 5명의 체중 변화를 기록한 결과 환자 모두 사망 순간 ‘21∼24g’의 체중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또 100년 후 스웨덴 연구팀들이 첨단 컴퓨터로 그 실험의 진위를 검증해본 결과 수많은 임종 순간에 환자의 체중이 21.26214g이 줄어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혼의 무게 21g’. 21g의 영혼이 사라지는 순간에 죽음을 맞는 것이다.

천국 메시지 받아들여야

첼로의 선율이 아름답다. 그 소리의 거처를 찾기 위해 악기를 정밀하게 분해해도 소리는 찾을 수 없다. 연주하는 사람과 악기가 함께할 때만이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영혼의 무게를 알 수는 있으나, 그 영혼의 거처는 어디인가. 영혼의 본질인 생명이 육체와 더불어 ‘만들어 내는 삶’을 봄으로, 영혼의 거처가 육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영혼이 떠난 후에는 더 이상의 삶은 이어지지 않는다. 영혼과 육체가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첼로와 인간을 부정할 수 없듯이, 삶을 만들어내는 영혼과 육체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늘이 낸 20세기 대표적 화가 피카소는 말한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을 그린다.” 그렇다. 피카소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알게 된 것’만을 그리기 때문에 그의 그림을 감상한 사람들 모두 다 감동할 수는 없다. 하물며 ‘21g’의 영혼이 땅에 묻히지 않고 육체를 떠나 머물게 되는 ‘그곳에 관한 메시지’를 누구나 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편리한 거짓말에 익숙해져서, 불편한 진실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러는 받아들일 것이고, 그들이 예수와 함께 천국에 이르게 될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요 3:11). 이제라도 ‘죽으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을 바꾸고, 영혼을 위해 집에서 가까운 교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장현승(과천소망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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