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데스크시각

[데스크시각-오종석] 아니, 공산당을 안 믿는다고

[데스크시각-오종석] 아니, 공산당을 안 믿는다고 기사의 사진

베이징에서 특파원을 하던 지난 5월. 가끔 만나던 20대 초반 중국 여대생과 대화하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가 시골 출신으로 청순하면서도 글로벌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얘기하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대뜸 “아니, 공산당을 안 믿는단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대화에서 자주 공산당을 비판했다. 중국이 발전하려면 공산당이 변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없이 하는 신세대 여대생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나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의미를 강조할 때 친구들 사이에서 종종 쓰는 표현이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공산당을 추종하도록 끊임없이 정신교육을 받은 탓에 이런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1당 독재 국가인 중국 사회에서 공산당은 절대적이다. 공산당을 믿어야 살기 편한 나라다. 공산당에 반대해서 감옥에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유주의 국가이자 준선진국가인 한국이 요즘 완전히 이분법 사회가 됐다. 공산당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식이다. 내 편이면 ‘좋은 사람’, 상대편이면 ‘나쁜 사람’일 뿐이다.

한국판 반 월가 시위로 반 금융정서가 확산되자 금융권 사람들은 모두 사기꾼이나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됐다. 시중은행 한 지점장은 최근 “집에서 아이들까지도 마치 고리대금업자처럼 바라봐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로 앉아서 서민들의 돈이나 뜯어먹는 몰염치한 인간으로 취급당한다는 하소연이다. 개인들의 금융자산 관리는 물론 기업 활동을 돕고 국가에 기여하는 부분 등은 아예 무시한 채 일방적인 비난 여론만 확산되고 있어 답답하다는 것이다.

카드사와 저축은행, 대부업계 종사자는 더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수수료와 대출금리로 먹고사는 가장 기본적인 영업 자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확산되니 죽을 맛이라고 한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일반 서민들은 물론 대기업, 정치권까지 너도나도 무조건 수수료만 낮추라면 그냥 망하라는 얘기나 같다”고 불평을 털어놨다. 물론 금융권의 탐욕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무분별한 배당과 탈법, 서민을 외면하는 금융 서비스 등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순기능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이들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이분법적 현상은 극에 달하고 있다. 찬성하면 친미주의자, 더 나아가 매국노로 몰린다. 반대하면 반미주의자, 좌파로 취급된다. 반대 시위에 나서면 전문시위꾼 등으로 내몰린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하다. 악성 댓글과 욕설, 괴담이 넘쳐나고 일방적 매도가 이어진다. 대한민국이 둘로 쪼개진 모양새다.

이분법 사회는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조장하는 측면도 크다. 내편 아니면 네편으로 명확히 구분해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 정책은 물론 사회 모든 현상에 대해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이러쿵저러쿵 얘기가 나오는 것도 내년 선거를 겨냥한 ‘내편 만들기’ 일환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도 지나치게 편향적인 보도로 이분법 사회를 부추기고 있다.

이제 올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연말연시에 어려운 이웃을 찾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등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내편, 네편이 아닌 우리편으로 서로 이해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따뜻한 사회가 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겠다.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이분법 사고의 함정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오종석 경제부장 jsoh@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