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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별 밑에서 살아온’ 김성근 감독


안도 다다오라는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가 있습니다. 며칠 전 그가 일본 텔레비전에 나와 일본인의 저력에 관해 말하면서 ‘교양(general knowledge)’과 ‘야성(wildness)’에 대해 말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일본에 필요한 것은 교양과 야성이라는 취지로 보였습니다.

저는 이 메시지에 공감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려면 따뜻하고 안전한 온실보다는 거친 야생에 나가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조건이 갖춰지면 하겠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어렵겠지요. ‘∼하면 ∼한다’는 식의 조건문 인생은 순치된 삶의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과 상반된 삶의 방식을 택하는 사람을 우리는 ‘야인’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들에서 사는 사람이죠. 조건문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 ‘그래도 나는 한다’는 방식을 택합니다.

김성근 감독을 흔히 ‘야신’이라고 부릅니다. 야구의 신이라는 뜻인데 그만큼 야구를 잘 안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김 감독을 야신이라기보다는 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야인 김성근’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겁니다. 평생 정식 구단의 감독을 맡지 못하고 재야에서 야구를 했다는 뜻이 물론 아닙니다. 기질상 야인이라는 것이지요.

SK구단을 맡아 여러 차례 우승을 하는 등 화려한 경력조차 그가 야인임을 돋보이게 할 뿐입니다. 우승하고 떠받들어져도 야인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야인이 되면 오히려 더 활기차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자신도 여러 번 잘렸기 때문에 해고에는 무감각하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잘려도, 그럼에도 내 야구를 한다는 삶의 방식이 그를 야인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 김 감독이 이번에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초대 감독을 맡았습니다. 프로야구 3부 리그쯤의 외인구단을 맡은 것이지요. 방출된 선수들, 꿈을 펴보지 못한 사람들을 조련할 텐데 아직 우리 사회에 두 번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선택이 야인 김성근에게 더 잘 어울립니다. 기존의 체제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야구를 펼치려 했던 그로서는 새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여러 가지로 힘듭니다. 너무 힘들어 야성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야성을 잃는다면 거친 시대에서 생존할 동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을 ‘별 밑에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지붕 밑에서 비와 눈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야인’보다 훨씬 멋있네요. 그가 독립야구단을 통해 우리에게 이제는 시들어져 흔적만 남은 야성을 일깨워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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