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기선] 선거운동의 자유 확대해야 기사의 사진

“내년 4월 총선 전에 여야 합의 가능… 규제 많고 복잡한 공직선거법도 개정을”

영국의 권위있는 조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2008년 이후 우리나라를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국가로 분류했다. 그리고 선거의 자유와 공정성 등을 평가하는 ‘선거과정과 다원주의’ 항목에서도 서구 민주주의 국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했다.

부정으로 얼룩졌던 우리나라 선거가 짧은 기간에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은 1994년에 제정된 공직선거법에서 비롯된 바 크다. 당시 선거법은 정치권의 기득권과 정파적 이해를 고려하지 않고, 공명선거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동안 선거개혁의 동인(動因)으로서 기능을 십분 발휘했다.

그러나 현재 선거법 내면을 들여다보면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선거환경이 확연하게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규제=공명선거 구현’이라는 90년대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판시한 바 있듯 선거운동의 자유는 선거의 공정과 평온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선거법은 기계적인 형평성을 추구함으로써 공정성의 본질과는 무관한 부분까지 과도하게 규제한다. 이제는 국민의 자정능력을 믿고,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를 합리적으로 완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선거법에 따르면 평상시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은 개진할 수 있지만 ‘선거운동’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개념을 구별할 수 있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비방이나 허위사실이 아니라면, 누구든지 말이나 인터넷을 이용해 선거와 관련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풀어야 한다.

후보자가 선거기간 중에 실시하는 선거운동의 방법도 세세하게 규제할 것이 아니라, 주민의 평온한 생활환경과 선거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 선거비용의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새로운 홍보기법이 끊임없이 개발될 텐데, 그때마다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규제의 실익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공연히 행정력을 낭비하고, 국민의 불만과 불신만 키울 우려가 크다. 다양한 선거홍보 기법이 등장한다면 오히려 유권자들이 선거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처럼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반면 매수나 비방, 허위사실 유포 등 선거의 본질을 해치는 행위에 대하여는 더욱 엄중하게 처벌하고 선거비용의 내역도 철저히 검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선거법의 또 다른 문제는 내용과 체제가 어렵고 복잡하다는 점이다. 그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한 조항이 17개나 될 정도로 선거법 내용은 허술하기까지 하다. 또한 제정 이후 17년간 무려 43차례나 개정되는 과정에서 법 체제의 일관성은 훼손되고 누더기가 됐다. 선거법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법문을 오해하거나 헛갈리기 쉽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특정 사안이 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선거법을 위반해 범법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사실은 자칫 선거에 대한 무관심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유권자나 선거관계자들이 알기 쉽도록 선거법을 바꿔야 그 실효성과 규제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가 질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이런 문제들이 입법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안은 정치권의 합의만 있으면 총선 전에라도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선거법의 내용과 체제를 전반적·체계적으로 재정비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거현장을 잘 아는 정계와 선관위·법조계·학계 인사 등이 참여하는 특별기구를 만들어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선거법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도 정치쇄신이다. 정치권의 적극적인 관심과 결단이 필요하다.

이기선 중앙선관위 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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