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현실돼 꿈을 심다 “부모님도 읽어 보세요”… ‘이수지의 그림책’ 기사의 사진

이수지의 그림책/이수지/비룡소

‘미디어는 곧 메시지’라고 말한 건 마셜 맥루한. 하지만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가장 전근대적이며 가장 원초적인(?) 매체인 종이책을 논할 때, 우리는 텍스트 이외의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종이의 질이나 책의 모양을 논하는 비평가는 없다. 독자들도 별 신경을 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작가들은 어떤가. 글자 모양이나 문단 나눔 등이 주는 시각효과로 텍스트 이면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던 시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기껏해야 부수적인 효과에 그치기 마련.

어쩌면 우리는 책이 어떤 메시지를 가진 미디어였는지 잊어버린 게 아니었을까. ‘이수지의 그림책’은 책을 넘기는 방식이나 책의 모양, 제본이 접힌 책 한가운데의 경계선까지 텍스트의 일부로 활용하는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해설서다. 네모반듯한 종이 모양이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관습 등은 단순히 활용되는 차원을 훌쩍 넘어 주인공 노릇을 하고 있다.

그림책 ‘파도야 놀자’를 보자. 가운데 선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 역할을 한다. 바닷물은 넘칠 듯해도 소녀가 있는 왼쪽 페이지로 넘어오지 못한다. 소녀는 파도가 넘치지 못하리라 믿고 의기양양하다(그림①). 그러나 다음 순간, 경계를 넘은 파도가 아이를 덮친다(그림②). 고르게 두 페이지를 덮친 바다는 꿈과 환상의 혼재, 아이의 변화, 분리돼 있던 두 세계의 결합을 의미한다. 또 다른 작품 ‘그림자놀이’에서 저자는 세로로 놓인 책을 가로로 펼쳐 읽는 기존 관습을 비웃고 가로로 놓인 책을 세로로 읽게 만든다.

독자에게 그것은 책의 질감과 두께, 색깔과 냄새까지 새삼 느끼게 하는 체험이다. 모바일용 ‘읽어주는 책’이나 전자책들로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책’의 미덕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수지의 그림책’은 한 가지 대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소개된 그림책들 역시 아이들 눈높이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어른들에게 상념의 기회를 제공하기 충분하리만큼 수준 높다.

이수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들의 복수’ ‘거울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등을 출간한 그림책 작가. 미국 뉴욕타임스 올해의 우수 그림책, 미국일러스트레이터협회 금메달, 브라질아동도서협회 글 없는 그림책 상 등에 선정됐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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