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송병구] 집집마다 기다림 초를 밝히려고 기사의 사진

아쉽게도 금쪽같은 시간이 감쪽같이 흘러 버렸다. 으레 이맘때면 성탄 풍경으로 연말연시를 맞는다. 대개 11월 말이면 초대형 성탄장식으로 반짝거렸는데, 올겨울은 경기지수를 반영한 듯 아직 거리가 차분해 보인다. 물론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변함없이 성탄의 자비심을 외치고 있다. 안쓰럽게도 쉼 없이 두드리는 종소리조차 꽁꽁 잠근 사람들의 주머니를 여는 일은 버거워 보인다.

돌아보면 언제든 성탄 직전의 이맘때는 가장 춥고, 어두운 시기였다. 곧 동지가 다가오니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때이다. 그런 까닭에 따듯한 불씨를 널리 나누고, 등불을 높이 밝혔던 것이 아닐까. 프랑스 속담에 “두 요한이 일 년을 나눈다네”라는 말이 있다. 두 요한은 하지의 성인인 세례 요한과 동지의 성인인 사도 요한이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낮과 밤, 더위와 추위, 그 시간의 갈림길에 존재하였다.

한 해의 분기점에 맞는 대림절

하나님의 달력인 교회력은 태양력보다 한 달 쯤 앞서 찾아온다. 올해 대림절 시작이 11월 27일이니 이미 교회력으로는 한 해를 시작하였다.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임무교대를 한 셈이다. 그 출발이 깊은 어둠에서 시작했다는 데서 교회력은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어둠이 가장 깊은 때에 빛에 대한 기다림은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둠이 밑바닥을 치면서 성탄을 맞이한다.

어둠이 깊은 까닭에 오히려 대림절은 빛의 절기라 불릴 만하다. 어둠 때문에 빛의 의미를 더욱 눈부시게 한다. 색동교회는 지난해부터 대림절 초(Adventkranz)를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대림절 4주일 동안 네 개의 초를 세운 화환을 만들어 가정마다 불을 켜자는 일종의 신앙운동이다. 10년 안에 전국의 가정마다 대림절을 지키고 성탄을 예비하는 절기문화로 정착시켜 보자고 호기를 부렸다. ‘기다림 초’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강남터미널 꽃시장을 드나들며 표준화된 모양을 개발하였다. 올해도 10월 중순부터 호들갑을 떨었다.

그동안 눈썰미 있는 교회들은 강단에 네 개의 대림절 초를 장식하였다. 그런데 이것을 가정에서 장식하려는 생각에는 못 미친 듯하다. 기다림 초는 독일교회가 150년 이상 누려온 대림절 전통에서 배운 것이다. 요한 힌리히 비헤른(1808∼1881)이 성탄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대림절 초가 지금은 대부분의 가정과 가게와 공공기관의 사무실까지 일상화되었다. 슈퍼마다 대림절 초는 가장 친근한 성탄 상품이고, 종류도 사람들의 아이디어만큼 천차만별이다. 네 개의 초는 예언의 초, 베들레헴의 초, 목자의 초, 천사의 초라는 정다운 이름도 붙어 있다.

따듯한 성탄 심벌 만들어야

우리는 성탄절 전야와 당일만 떠들썩하였지 성탄에 대한 기다림의 과정은 없었다. 탄생이 있기까지 기다림이 없고, 축하 이전의 산고가 없으며, 기쁨 이전의 기대감이 생략되었다. 다만 성탄을 상품화하는 데 휩쓸렸고, 교회의 언어와 문화로 세상의 기쁨을 표현하는 일에 둔감하였다. 겨우 성탄절에 대한 지적소유권만 주장해온 것은 아닌가.

대림절을 겨울철의 사순절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 경건의 분위기 때문이다. 기다림 초를 차례차례 밝히는 일은 우리 집 거실에, 아이들의 동심에, 내 마음 속에 거룩한 성탄의 공간을 예비하는 일이다. 그 불빛을 통해 가난한 이웃이 보이고, 사회의 그늘이 보이고, 우리 시대의 구유가 보일 듯하다. 기다림 초가 집집마다, 따듯한 가슴마다, 평화로운 성탄의 심벌로 자리잡으면 좋겠다.

송병구 색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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