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100) 은자여, 저 다리를 치워라 기사의 사진

중중첩첩 바위산 에워싼 곳에 초가집 세 채 옴팍하게 자리 잡았다. 어디 저렇게 세상과 담쌓은 데가 있나 싶다. 대나무와 매화는 가꾼 손길이 없어 위로 옆으로 내키는 대로 자랐다. 볼작시니 눈 내린 겨울이다. 시간조차 얼어붙는 적막 속에서 오도카니 방안에 앉은 사람, 무엇을 내다보는가. 몸서리치는 격절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그는 은사다.

입안에 세상사 비평을 담지 않고, 눈썹 사이에 번뇌의 그림자를 지우면 세속에 살아도 신선이라고 한 이는 인조 때의 문신 신흠이다. 은둔의 고결함이 반드시 산속에 있지는 않다는 얘기겠다. 아니, 산중에서도 온전한 은둔은 어렵다. 벼슬 버리고 국화 울타리 뒤에 엎드린 도연명마저 술잔 들고 사립문 두드리는 친구는 차마 내치지 못했다.

참된 은자의 모습은 어떤가. 생각건대 인연과 관계를 청산한 사람이 아닐까. 누구처럼 살구꽃 핀다고 모이고, 참외 익는다고 부르고, 연꽃 핀다고 손짓하고, 눈 온다고 한 턱 내다가는 무늬만 처사(處士)에 머물기 십상이다. 은자의 처신은 혹독해야 마땅하다. 그의 목표는 삭적(削跡)이다. 한 살이의 흔적조차 통째 지우려든다. 하여 그림자는 산을 벗어나지 않고(影不出山), 발자취는 시속에 남기지 않는다(跡不入俗). 이것이 숨은 자의 모진 각오다.

18세기 강희언의 작품이다. 이웃에 사는 겸재 정선에게 배웠고, 단원 김홍도와 교제했던 화가다. 은자는 신독(愼獨)의 어려움을 안다. 혼자 있을 때 삼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길은 고예독왕(孤詣獨往), 오직 홀로 이루고 혼자 걸어간다. 그럴지니 그림 속 저 다리를 건너올 사람을 기다릴 까닭이 없다.

손철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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