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말걸기-김나래] 박근혜, 이젠 ‘소통의 힘’ 보여줘야 기사의 사진

요즘 여의도는 온통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한나라당과 정치권이 비상이니 전면에 나설 건지, 비상대책위원장이란 직책을 맡을 건지, 쇄신파가 주장하는 재창당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지. 궁금해하긴 친이명박계, 쇄신파는 물론 친박근혜계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5일자 신문 인터뷰를 끝으로 열흘 가까이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특유의 ‘침묵 정치’이자, 측근들이 말하는 ‘부작위의 정치’다.

하지만 요즘 부쩍 이런 박 전 대표의 소통 방식에 물음표를 찍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뜻인 것 같다’며 주변 인사들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때문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지난 주말부터 벌어지고 있는 ‘친박계와 쇄신파’의 마찰이 대표적이다. 당 쇄신에 한 목소리를 내며 보폭을 맞춰왔던 이들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친박계 영남권 중진 의원들이 “박 전 대표가 전권을 가진 비대위원장을 맡아 총선까지 치러야한다”는 이야기가 기폭제가 됐다. 이에 쇄신파 정두언, 정태근, 권영진 의원 등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했고 권 의원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충신이 아니라 간신이 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쇄신파들이 박 전 대표를 전권을 가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되, 재창당을 당론으로 못 박자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양측의 감정 싸움은 극에 달했다. 최경환, 허태열 의원 등 영남권 친박계 중진들은 “십자가를 지라고 해 놓고는 ‘꽃가마를 타라 하느냐’”라거나 “박 전 대표가 누구보다 공정한 공천을 하리라는 것을 못 믿는 것 아니냐”고 발끈했다.

상황이 이렇게 번지자 쇄신파 의원들은 “박 전 대표의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듣겠다, 직접 만나서 설명하겠다”며 면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차례 여러 채널로 연락을 했음에도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한 쇄신파 의원은 “21세기에 맞는 소통 방식은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다른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스타일이나 그간 살아온 배경 등을 모두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보여주는 이런 모습은 너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 부재를 지적해 왔는데,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뭐가 다르겠냐는 깊은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결국 정태근, 김성식 의원의 탈당 선언으로 쇄신파와 박 전 대표의 연대 또한 파국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이렇듯 당에선 박 전 대표의 소통 스타일에 대한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원총회에 불참하는 문제부터, 친박계 의원들이 중요 현안에 대해 박 전 대표의 뜻이라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등등 사례도 다양하다.

2004년 박 전 대표가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러 나왔을 때의 일화라며 한 보좌관이 전한 얘기다. “박 전 대표가 당시 (내가) 모시던 의원 방으로 찾아왔다. 잣 등 건과류를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싸 들고 와서는 대변인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당시 의원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데 늦어지면서 한시간 넘게 혼자 앉아 기다리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사석에서 박 전 대표를 만났다는 한 교수는 “정치인들을 만나면 80%는 자기 이야기만 하고 왜 불렀는지 머쓱할 정도로 잘 듣질 않는데 박 전 대표는 메모까지 하며 경청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사실 정치권에서 박 전 대표만큼 ‘말의 위력’을 갖고 있는 정치인도 없다. 하지만 이젠 간결하고 신뢰할 수 있는 메시지 뿐만 아니라 ‘소통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박 전 대표의 소통 문제는 단순히 그의 스타일 문제가 아니라 집권 여당과 정치의 위기로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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