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컴백 가수 구창모… 지난 20년은 리허설이었다 기사의 사진

구창모(57)는 음악회 리허설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베이비붐 세대의 ‘오빠’는 그 세대의 아들인 기자에게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는데, 중년의 사진기자는 울렁이는 목소리로 “제가 정말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어쩌다 마주친 그대’”라며 덥석 손을 잡는 것이었다.

사진기자는 그를 만나러 오는 길에 이미 “구창모가 누군지 아느냐. 우리 시대엔 우상이었다”고 난데없는 말을 하며 흥분의 조짐을 보였었다. 구창모를 20년 만에 무대로 불러낸 힘은 그렇게 보존된 감수성이었을 것이다. 그는 생전 해본 적 없는 라디오 DJ(진행자)로 방송 복귀전을 치렀다.

“아우, 말도 꼬이고 처음에 어색했죠 뭐. 한 6개월 지나고 나니까 조금 안정이 되고.”

-연필 물고 발음 연습도 합니까.

“그런 건 없어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거니까.”

그는 배철수와 같은 시간에 방송한다. 두 사람은 80년대 초 그룹 ‘송골매’를 끌고 가던 쌍두마차였다. “거긴 팝 마니아 위주고 우린 불특정 다수고”라며 구창모는 선부터 그었다.

“라디오 골든타임이 오후 6시부터 8시래요. 퇴근시간에 맞춰 저를 꽂아놓은 거죠. 차를 잠시 세워놓고 문자 보낸다는 분이 많으시고. 또 주부들이 저녁 지으면서 듣는 시간이더라고요.”

-생각만큼 반응이 있나요.

“전체적인 지명도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많은 분이 어쨌든 문자도 보내주시고, 곡 신청도 하시고 그러니까.”

구창모는 인기가 하늘에 걸려 있을 때 가수활동을 접었었다. 이후 구소련에서 차(車) 팔고 집 지어 떼돈을 벌기도, 깡통을 차기도 했다. 1978년 TBC 해변가요제로 데뷔해 91년 무대를 떠났고, 그해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건설업체 회장으로 이름을 걸어놓고 있으니 그는 이제 가수보다 사업가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요. 마인드는 가수에 더 가깝습니다. 가수가 천직이고, 노래하는 게 천직이에요.”

-그럼 사업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사업이라는 건 금년에 ….”

말을 멈춘 그는 얼마나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신앙적인 얘기를 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방송국 대기실 소파에 나란히 붙어 앉아 있었다.

“성경에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랑 뜻을 구하라는 말이 있어요. 금년에, 과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뭔가 생각했는데 사업은 나를 위해서, 내 복락을 취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닌 걸로 완전히 정했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사업을 하겠다는 거예요.”

묻기도 전에 그는 부연했다.

“그 사업이 뭐냐면, 제가 건설업을 하는데 사업 지역이 중앙아시아 회교 5개국입니다. 그곳에 하나님 나라 건설하는 걸 제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선교센터를 건축하고 교회도 건축해야 되고. 마침 뜻이 맞는 선교사 분이 계세요. 어렵게 선교하시는 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특히 2세 교육이 참 힘들거든요.”

그가 몇 년 전부터 교회에서 복음성가 부르고 간증도 한다는 소문은 들었었다. 종교 이야기는 생각보다 빨리 나왔고 노골적이었다.

-교회 집회에 게스트로 자주 참석한다지요.

“올 들어 한 달에 한 번꼴은 한 것 같아요.”

-예배당에서 노래하는 기분은 어떻습니까.

“더 긴장돼요. 제가 주로 초청받아 가는 데가 새 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거든요. 성경 말씀, 찬송가만 가지고는 거부감이 올 수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콘서트 형식으로 교회와 새 신자들의 접합점을 찾는 거죠. 저를 중간 매체로 해서.”

그는 지난달 인천의 한 교회 집회에서 “찬양 인도하는 게 소망”이라고 했었다. ‘찬양 인도’는 교인이 찬송가를 따라 부르도록 이끄는 일이다.

“내 인생의 목표를 확실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선교하고 전도예요. 찬양을 통하든 말씀을 통하든 간증을 통하든. 어떤 형식이든 상관없이 전도하는 거예요.”

-목사가 되려는 건가요.

“그거까지는 아니고. 60년 가까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증거하고 또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예요. 내가 지금부터 신학 공부 해서 선교사 되고 선교하러 간다는 건 사실 불합리합니다. 내 역할은 지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업의 축복을 달라고 매일 간구해요. 하나님 영광을 위해 다 써야 될 물질들이죠.”

-명색이 인기 가수였는데 찬양 인도쯤이야 지금이라도 하겠다면 시켜주지 않겠습니까.

“교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매주 하지는 않지만 주어졌을 때 항상 하고 있습니다.”

-교회 집사지요?

“‘잡사’에서 집사로 이제 빨리 탈바꿈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2011년도는 저한테 굉장히 특별한 해예요. 저 혼자 정한 거지만. 거듭난 해입니다. 2011년도 7월. 설교 들은 거 적는 노트가 있는데 제가 거기다 2011년 7월 1일을 내 삶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날로 정해버렸어요.”

그는 한껏 흥분해서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기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전에는 집사라는 직분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잡사’라고 그랬어요. 세상 것에 너무 묻혀 있고 신앙적으로는 발전이 없고. 그러다가 금년 들어 40일 ‘특새’(특별새벽기도회) 다니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죠.”

-집사는 언제 됐습니까.

“꽤 오래 됐죠. 97년도인 것 같아요.”

-새벽기도 참석은 목사가 권유한 겁니까.

“아니, 스스로 나갔어요.”

-달라진 게 있습니까.

“많은 변화가 있었죠. 우선 말씀의 중요함을 알았어요. 말씀에 순종하라는 얘기를 항상 들었는데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던 거예요. 말씀이 뭔지도 몰랐던 거죠. 근데 성경 말씀에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될지가 다 있더라고요. 40일 특새 하면서 그걸 깨달았고. 또 은혜를 받음으로써 살아가는 자세도 바뀐 거예요.”

-불과 몇 달 안 됐군요.

“얼마 안 된 거죠. 제가 원래 모태신앙이에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교회를 갔는데, 그러다 조금 유혹이 있으면 주일 성수는 다 빼먹고. 그런 생활을 하다 금년 들어 주일 성수에 대한 중요함도 깨달았어요. 육체적으로 아주 힘들었을 때 며칠 빼고는 새벽기도는 계속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이날도 새벽기도를 하고 왔다고 했다.

-기독교식으로 말해 회개하고 거듭난 건가요.

“그렇죠. 회개한 거죠. 그러니까 내가 간증집회, 찬양집회도 할 수 있는 거죠.”

-7월 이전에도 하지 않았습니까.

“몇 번 하긴 했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형식적으로 한 거예요. 진심에서 우러나오거나 정말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자세는 거의 없지 않았었나. 그냥 제안이 와서 응한 거죠.”

-사업 실패했을 때 아내 통해 신앙 회복했다는 얘기는 과장이었나요.

“조금씩 업그레이드는 됐어요. 처가가 아주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에요. 처남이랑 동서가 목사고. 제가 결혼 전에는 주일 성수 같은 건 지키지도 않았고 특별한 행사 있을 때 교회 가는 정도였거든요.”

-결혼하곤 아내가 끌고 갔겠군요.

“결혼하면서 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어요. 금년도 마찬가지예요. 집사람한테 신앙적인 영향은 굉장히 많이 받았죠.”

-아내가 독실한 기독교인인 걸 알고 결혼했나요.

“알고는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한 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는 녹용 사업으로 주저앉았을 때 10살 어린 아내를 홍콩에서 만났다. 3개월 구애 끝에 전화번호를 땄고 97년 결혼했다. 구창모는 “집사람 만난 게 내 인생에서 정말 큰 전환점”이라고 했다.

-너무 달라져서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겠습니다.

“모르겠어요. 겉으로는 그런 표현을 전혀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변화됐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말이라도, 나는 확실하게 신앙인으로 첫걸음을 내디뎠으니까 이상한 걸로 유혹하지 마라고 해요. 술 마시러 가자고 하지 말라거나 일요일에 나 부르지 마라. 교회에서 살아야 되니까. 그렇게 선을 하나씩 그으면서 가는 거죠.”

그는 올 들어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작년까지는 교회 다니면서도 담배를 피웠다는 말이었다.

-교회 다녀도 옛 습관 버리기는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 담배가요, 금년 들어 저는 마약이라고 표현하거든요. 그전까지는 그런 생각 안 하고 정말 맛있는 기호식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열혈 팬임을 초반에 ‘커밍아웃’해버린 사진기자가 “의지로 끊었나, 약 같은 걸 썼나”라고 물었다.

“의지로 끊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딱.”

-언제부터 피웠습니까.

그는 민망한 듯 웃었다.

“좀 일찍부터 피웠습니다. 중3 올라가면서. 그러니까 16살부터 피웠습니다.”

-담배 끊은 이유도 신앙이었나요.

“노래 때문이기도 했지만 신앙적인 게 사실은 주효했던 거죠. 우리 집사람이 항상 ‘담배 피우면서 무슨 찬양가수가 되겠다는 거냐’고 잔소리했거든요. 그전부터 복음송 가수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은혜로운 소리를 내려면 일단 담배를 끊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잔소리가 폐부에 와 닿았죠.”

-복음성가 음반을 내려고 합니까.

“기획하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찬송가를 하나씩 초이스(선곡)하고 있어요. 신곡보다는 기존에 많이 알려진 복음송을 하려고요. 내년에 대중가요랑 복음송 음반 두 가지를 다 해야 돼요.”

꽤 팔릴 거라고 그도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사업하면서도 가수 시절의 명성과 노래 실력 덕을 봤다. 노래 한 곡에 자동차 수십 대가 팔렸고 12만평(39만6694㎡)의 땅이 수중에 들어왔다.

“그 당시는 내가 잘난 줄 알았죠. 처음 가서 장사가 너무 잘됐기 때문에 내가 잘나서, 노래도 잘해서 복이 다 나한테 온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그게 다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돌이켜보면 돈도 참 많이 벌어보고 했는데 내 힘으로 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

20년 동안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신 거예요.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거든요. 하나부터 열까지 세워주셨다가 쓰러뜨려서 저 낭떠러지로 떨어뜨리기를 두세 번 반복했어요. 그러면서 세상을 알게 되고 신앙적으로 눈 뜨고. 그렇게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돼 왔다는 걸 금년에 와서 깨달은 거예요.”

그는 긴 말을 숨도 쉬지 않고 했다. 바람 빠진 말이 목구멍에 걸려서 흔들렸다.

-사업은 지금도 잘됩니까.

“키르키스스탄에서 아파트 사업을 하는데 답보 상태에 빠졌어요. 작년에 거기서 혁명이 나는 바람에 약속했던 자금줄이 다 끊어져서. 금융권 대출까지 600억∼700억이 들어가 있어요. 마무리도 못 짓고 공중에 떠 있으니까 스트레스 받았죠. 그 돈 다 날아가는 거거든요. 그러다가 금년 들어 내려놓는 걸 배운 거예요.”

-결국 포기했다는 말 아닙니까.

“다릅니다. 포기는 내가 사업을 그냥 접어버리는 거예요. 내려놓는다는 건, 이 사업은 하나님이 나한테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뜻 가운데 있으면 언젠가는 나한테 주실 것이고 뜻에 없다면 떠나보내는 거죠. 들어간 돈 아까워서 너무 매달려 있다가 탁 놓으니까 마음이 참 편한 거예요.”

-몇 억 잃고 인생 포기하는 사람도 많은데 천성이 강한가 봅니다.

“하나님이 저한테 정말 큰 선물 주신 게 긍정이에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망가지더라도 ‘그래, 나는 곧 잘될 거야’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항상 갖고 있어요. 성경 말씀 인용해도 괜찮죠? 하나님이 절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지 않는다고 그랬거든요. 사람들이 지레 겁먹고 무너져서 그렇지 성경에 있듯 다 피할 길을 주시거든요.”

대화는 공연 리허설 탓에 한 차례 끊겼다. 우리는 순댓국을 들이키고 돌아와 남은 이야기를 바닥냈다.

-중년의 송골매가 다시 뭉치면 어떨까요.

“그 뜻은 갖고 있어요. 배철수씨하고 만나서 트라이를 해봐야죠. 시간만 허락된다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멤버들도 연락이 됩니까.

“그럼요. 한 명은 벌써 세상을 떠났어요. 간경화로.”

구창모는 감기약을 삼켰다.

글 강창욱 기자·사진 김태형 선임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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