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너무 천박한 지도층의 언사들 기사의 사진

“당나귀는 버드나무에 매여 있는 게 사필귀정(事必歸正)이야.” 1970년대 초 신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유진산씨가 당권 경쟁자인 정일형씨를 향해 한 마디 던졌다. 당나귀는 정일형씨의 성인 정(鄭)의 한자가 당나귀에 비유되는 것을, 버드나무는 자신의 성인 유(柳)의 한자 훈이 버드나무임을 빗댄 조크였다. 그러니까 당나귀 정씨인 당신은 버드나무 유씨인 나에게 매여 있는 게 옳게 돌아가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정일형씨가 받았다. “사필귀정은 사필귀정이지. 그런데 한자로 쓰면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아니라 사필귀정(蛇必歸井)이야. 뱀은 반드시 물 속으로 돌아간다는 말이거든.” 당시 유진산씨는 지략이 뛰어나 정계에서 대사(大蛇), 곧 큰 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큰 뱀인 당신은 반드시 우물에 빠질 것이라는 응수였다.

싸움에도 풍류가 있었는데

명연설가이기도 했던 영국의 처칠 수상이 의회에서 연설을 하는데 야당 의원들이 연설을 방해하기 위해 웃고 소란을 피웠다. 처칠은 “가마솥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 같다”고 한 마디 한 뒤 연설을 계속했다. 무슨 뜻인지 몰랐던 야당 의원들은 나중에야 이 말이 전도서의 7장6절 “우매한 자들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를 인용한 것임을 알았다. 야당 의원들은 우매한 자들이 되고 만 것이다.(신형식 편저 ‘영국의회’)

우리 정치판에서도 옛날에는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라이벌끼리 벌이는 공방에도 멋과 품위와 깊은 맛이 있었다. 정치가 그만큼 격이 있었다는 말일 터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정치인들의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경박하다 못해 천박하기 짝이 없어졌다.

모두가 막가파된 세태

어떤 여당 대표라는 사람은 여기자들 앞에서 “요즘 룸살롱에서는 자연산(성형하지 않은 여자)이 더 인기가 있다”고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조크랍시고 했다. 또 다른 여당 대표는 많은 대학생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동료 최고위원을 겨냥하여 “꼴같잖은 게 대들고, X도 아닌 게 대들고… 패버리고 싶다”고 하는가 하면 “기자의 아구통을 날리겠다”는 등 폭언을 여과 없이 쏟아내기도 했다. 또 어떤 의원은 아나운서 되는 게 좋으냐, 기자 되는 게 좋으냐고 묻는 여대생에게 “아나운서 되려면 다 줄 생각해야 한다”고 여자 아나운서를 성상납이나 하는 사람들로 묘사했다. 그는 또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는 여학생에게 “대통령님이 너만 쳐다보더라. 남자는 다 똑 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 옆에 사모님(김윤옥 여사)만 없었으면 네 번호도 따 갔을 것”이라고 듣기에도 민망한 저질 발언을 해댔다.

어디 정치인들뿐이겠는가. 권위의 상징인 검은 법복을 입고 경우에 따라선 사람의 생사여탈권까지를 가진 판사님들도 품격과는 동떨어진 말들을 뱉어낸다. 어떤 판사는 트위터에 “앞으로 분식집 쫄면 메뉴도 점차 사라질듯. 쫄면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 되니. 푸하하”라는 글을 올렸다. 방송통신위가 SNS 심의 전담팀을 만들겠다는 방침에 대한 비아냥이다. ‘쫄면’은 ‘위축되면’의 비속어이고, ‘빅엿’은 ‘골탕’의 비속어라고 한다. ‘가카’는 물론 ‘각하’를 발음대로 표기하여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신도들 앞에서 “박근혜씨가 시집을 가봤냐”고 시비하고, 박 전 대표를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짖는 닭과 개에 비유하는 성직자도 있었다. 다른 성직자는 또 “여자가 대통령 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들 잘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듣기에 따라선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여기에서 예를 든 사람들의 사상이나 주장을 시비하자는 게 아니다. 정치인, 판사, 성직자들은 우리 사회의 중심을 잡고 이끌어가야 할 지도층 인사다. 그런 인사들이 인터넷 등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는 비속어 등을 생산 전파하니 딱한 노릇이다. 그러한 막말과 비속어들이 말하는 이의 인격과 권위를 훼손함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를 더욱 강퍅하게 만든다. 서로 싸우더라도 품격 있는 말로 공격하는 것이 당사자는 몰라도 제3자들을 설득하는 데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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