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년 4월 명나라 사신들을 영접한 태종은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된다. “조선에 가서 잘 생긴 여자가 있으면 몇 명을 간택해 데리고 오라”는 황제의 명을 받았다는 것. 태종은 곧 공녀(貢女) 선발을 담당하는 관청을 설치하고 전국에 금혼령을 내렸으며 각 도에 관리를 보내 여성을 간택하게 했다. 대상은 양가의 13세 이상 25세 이하 미색을 갖춘 처녀였다.

하지만 선뜻 딸을 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에 따라 처녀를 숨기는 집안에 대해서는 재산몰수와 매질 등 가혹한 처분이 이어졌다. 결국 그 해 11월 사신들은 최종 선발된 처녀 5명을 데리고 명나라로 돌아갔다. 당시 처녀들의 행차에는 뒤따르는 가족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이어졌다고 한다. 조선의 공녀 역사는 공식적으로는 중종 때까지 계속된다.

나라가 보내도 이처럼 억울할진대 식민지 시절 강제로 끌려갔던 이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수요 집회가 지난 14일 1000회를 맞았다. 정대협은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 정오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제 강점기 위안부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책임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때 집회를 취소하고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 때는 추모집회로 대신한 경우를 빼면 20년간 이어진 세계 최장 집회다.

이날 집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대사는 이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하루빨리 사죄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날 일본대사관 건너편에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양국 외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낸 평화비도 공개됐다. 시민사회의 모금으로 건립된 이 평화비는 위안부 소녀 모습을 형상화했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집회가 1000번을 맞도록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는 일본의 모습은 실망스러울 뿐이다. 현 정부 역시 뉴라이트 쪽의 입김이 커지면서 위안부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 지난 8월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배상을 위한 적극적 교섭이나 중재에 나서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한·일 양국의 무관심 속에 위안부 할머니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17일 일본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강도 높게 언급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화려한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성과들이 나왔으면 한다.

최정욱 차장 jw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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