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대북전략국 폐지·정보요원 감축… ‘휴민트’ 급속 붕괴 기사의 사진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8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중병설이 나돌 때 정보당국은 김 위원장의 뇌(腦) MRI(자기공명단층촬영) 사진을 입수했다. 이를 분석해 뇌졸중으로 쓰려졌음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사진은 넉 달 뒤 한 월간지에 유출돼 보도됐다.

같은 해 9월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김 위원장 건강 상태를 설명했다. “부축하면 움직일 수 있다” “스스로 양치질을 할 수 있다” 등 직접 보기 전엔 알기 힘든 정보까지 공개했다. 설명을 들었던 한 의원은 “정보력을 과시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두 이야기의 결말은 같다. 당시 정보당국에서 활동했던 소식통은 20일 “북한은 즉각 정보가 새나간 경로를 추적해 혐의가 있는 인물들을 모두 제거하고 관련 암호체계도 싹 바꿨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휴민트(Human Intelligence·인적 정보)가 크게 약화됐다”고 전했다.

정부가 김 위원장 사망을 까맣게 몰랐던 건 한·미 대북정보망의 한 축인 휴민트 체계가 붕괴됐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북한 정보를 미국과 공유할 때 우리가 당당할 수 있는 건 북한 내 정보원을 통한 휴민트 덕분”이라며 “인공위성 등 첨단 장비를 갖춘 미국도 세밀한 내부 정보는 한국에 의지한다”고 말해 왔다. 이런 휴민트가 이번엔 전혀 제 기능을 못했고 그래서 미국조차 김 위원장 사망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휴민트 붕괴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됐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태, 지난 5월 김정은 방중 오인 등으로 취약한 대북 정보력이 도마에 오를 때마다 정치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휴민트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대북 인적 정보망이 왜 이렇게 와해됐는지, 그 분석은 늘 엇갈렸다.

정부 인사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햇볕정책을 펴온 탓에 대북 첩보활동이 약해졌다”고 주장하는 반면, 전 정부 측에선 “이명박 정권 들어 남북 교류를 끊고 대결구도가 형성되면서 휴민트 활동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국정원 출신의 한 인사는 “원인을 단정해 말하긴 어렵지만 교류와 접촉이 많을수록 정보원 포섭과 유지가 쉽고, 상대방도 이런 활동을 어느 정도 용인해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무적으로는 2009년 부임한 원세훈 국정원장의 조직개편이 대북 정보력 약화를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은 1·2·3차장이 각각 해외, 국내, 북한 파트를 담당하는 체계였다. 북한 정보는 모두 3차장실로 모였다. 원 원장은 이를 분석(1차장) 수집(2차장) 과학정보(3차장) 체제로 재편했다.

이에 3차장 산하였던 ‘대북전략국’은 폐지됐고 북한 정보를 분석하던 ‘북한국’은 1차장 아래로 옮겨 해외정보 분석 업무와 통합됐다. 대신 통신감청, 위성·항공사진 판독 등 과학정보 업무가 3차장실로 갔다. 원 원장은 “모든 정보가 통합돼야 살아있는 정보”라며 개편을 단행했고 대규모 인적쇄신도 이뤄져 북한 정보 전문요원의 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휴민트 구축은 짧으면 2∼3년, 길게는 5∼10년이 걸리는 작업이라고 한다. 한번 무너지면 복구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정보망이 정부의 대북 정책기조에 흔들리고, 정보당국의 아마추어 같은 정보 유출과 실험적 조직개편에 시달리다 김 위원장 사망이란 대형사건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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