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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이동훈] 감추기와 드러내기

[데스크시각-이동훈] 감추기와 드러내기 기사의 사진

1995년 어느 날, 독일 시민들은 베를린 시내 연방의회 의사당 건물이 대형 천막으로 포장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멀쩡한 의회 건물을 사라지게 한 도발에 대한 당혹감은 점차 의구심으로 바뀌어 갔다.

의사당을 포장한 당사자는 불가리아 출신 설치미술가 야바체프 크리스토 부부로 감추는 것이 드러내기임을 증명하려는 차원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의 저서를 보면 크리스토가 독일이 민주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겪었던 정치적 투쟁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값지게 얻은 결과인가를 세계인들이 느낄 수 있도록 포장 이벤트를 벌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감추기는 나다니엘 호손 등의 소설문학뿐 아니라 미술에서도 가끔 등장한다. 평소 너무나 가까이 있어 아무렇지 않게 느끼거나 무덤덤한 존재로 치부되던 주변의 자연물이나 주요 건물을 장막 속에 감춰버림으로써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다.

어쩌면 인류 역사는 감춰지는 데 대한 민초들의 원초적 두려움을 타파하려는 싸움의 연속일지 모른다. 늘 감추려는 자는 지배층이었고 드러내려는 자는 하층민이었다. 조선시대 풍속화가 신윤복은 아낙네들의 속살을 과감히 묘사해 성적 체통을 중시하는 양반들의 위선을 폭로했다고 해서 궁궐 화실인 도화서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워터게이트는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추악한 음모를 폭로함으로써 미국 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는 발단이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사건 특종을 낚음으로써 일개 로컬 신문에서 일약 전 세계 유력지로 발돋움했다.

올 한 해 전 세계에서 날아든 굵직한 뉴스들만 봐도 감추기와 드러내기 공방의 연속이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서 비롯된 아랍의 봄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수십년 된 독재정권을 몰아내려는 민초들의 투쟁의 결실이다. 위키리크스는 어떤가. 미국의 비밀 외교문서를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세계 최강국의 정보독점주의를 타파하자는 의도였다. 물론 우방들과의 외교 마찰을 불러 폭로가 능사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찮지만 전 세계인들은 생생한 미국의 외교 비사를 만끽했다.

그러나 감춘 것을 드러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독재정권들은 감시 수단을 동원해 자국민들을 철저하게 억압하므로 수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영국의 IMS 리서치에 따르면 근년 들어 중동 지역과 구 소련 지역에서 감시 장비 매출이 연간 16% 상승했다.

이런 감시 장비들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물결을 거스르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독재국가에서 가려졌던 시민들의 주장과 목소리는 트위터를 통해 온라인 공간에서 세를 집결해 외부 세계로 실시간 확산되는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다. 새로운 혁명의 불쏘시개로 자리잡은 셈이다.

최근 장기 집권을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TV 장악을 통한 여론조작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시도’로 드러나고 있음은 SNS와 블로그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중국 정부도 갖은 방법으로 광둥성 우칸촌 사태를 가리려 했지만 SNS 앞에 무릎꿇고 말았다.

북한이 평양에 머물던 외국인들을 쫓아내고 국경을 봉쇄하고 있다. 2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기도 하지만, 외부 세계는 북한이 일종의 감추기를 통해 김정은 체제 공고화를 시도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영국 등 서방 언론들은 북한 인민들이 이에 항거해 아랍의 봄처럼 드러내기를 시도할지 주목하고 있다.

이동훈 국제부장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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