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현길언] 황폐한 교실을 회복하려면 기사의 사진

“학교 선생님의 수업을 잘 들어야 대학 입시에 유리하다는 믿음을 갖게 해야”

수능 시험 날 수능출제위원장은 올해에도 EBS 방송 교재를 중심으로 출제했기 때문에 방송을 잘 듣고 그 교재를 공부한 학생은 어렵지 않게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매년 되풀이되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파행적으로 이뤄지는 한국 교육의 현실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된다.

EBS 방송과 그 교재가 교실에서 이뤄지는 선생님 수업이나 교과서보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 기회와 교재가 된다면 교육 현장인 교실과 그곳에서 학습활동을 주도하는 교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수업이 계속된다면, 그리고 응당 그렇게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모두가 인정하게 된다면, 학교 수업은 겨우 내신을 위한 방편으로 추락하게 될 것이고, 교실의 황폐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교실의 황폐화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교육활동은 모래 위에 짓는 집에 불과하다.

학생들의 과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교육방송에서 교과별 수업 방송을 강화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학교 수업을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그것이 교육방송의 고유한 몫이다. 교실은 교육활동의 중심 공간이다. 이 본질을 외면한다면 교실은 황폐해지고 모든 학교 교육활동은 신뢰를 잃게 된다.

아무리 비본질적인 문제가 판을 치는 사회라 할지라도 교육은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육의 결과는 정직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의 난맥상은 비본질적인 문제가 주도하는 교육정책의 결과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무너지도록 제도화돼 있는 이 현실에서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최근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교육 현장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 교실에서 교사의 자리가 무너져 버리고, 학생과 교사 사이에 신뢰가 실종된 현실에서 학생의 인권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학생의 인권이 교육제도나 교사의 반인권적 행태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면, 그것은 교사의 윤리의식과 교육자적 자질을 신장시키고, 잘못된 교육제도의 개선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인권의 논리로 해결하려 한다면, 교사들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편법을 쓰게 될 것이다. 표 나지 않는 체벌을 궁리할 것이고, 허수아비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선동적 언어를 남발하고, 지사적 풍모를 과시할 것이다. 이러한 교사들의 행태는 결국 철저한 교육적 상술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권과 학생 인권이 무슨 의미를 가질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제도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망상이 일반화됐다. 이것은 제도의 권위를 강화하는 비민주적 발상이다. 제도가 ‘선한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본질에 근거해야 한다. 본질에서 벗어난 제도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 예를 한국의 대학입시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교육정책 근간은 대학입시제도에 있고, 그 제도의 바탕에는 과외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본질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고식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를 땜질하는 데 정책이 머물렀기 때문에 수없이 제도를 바꿨으나, 과외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아무리 과외가 사회 문제가 된다고 해도, 학교에서 선생님의 지도 하에 교과서를 충실하게 공부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출제하는 것이 본질에 근거한 (매우 형식적이지만) 수능 출제의 대원칙이다. 우리 선생님의 수업을 잘 들어야 대학 입시에 유리하다는 믿음, 이것이 교실의 황폐화를 막고 한국 교육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교육기관에서 교사와 만남으로 가족 외에 다른 사람과 첫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그 첫 만남에서 ‘신뢰’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평생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 그들이 살아가면서 맺는 모든 인간관계는 이해와 허위적인 가치에 얽매이게 되고, 그래서 그들은 한평생 살벌하게 살아가게 된다.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인생살이다.

현길언(소설가, 본질과현상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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