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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장현승] 둥지에 담길 수 없는 삶

[삶의 향기-장현승] 둥지에 담길 수 없는 삶 기사의 사진

삶이라는 작가가 출간하는 세상이라는 책의 한 페이지를 넘겨야 할 이맘때가 되면 으레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린다. 추위로 코트의 깃을 올린 행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시린 손에 포장된 선물 꾸러미들이 눈에 띈다. 사랑과 관심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하는 정겨운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 따뜻한 상상을 하게 한다.

기억의 문이 열리는 한 해의 끄트머리, 그 명상의 공간에서 우리는 문인이 되고 시인이 되고 철학가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꾼인 ‘핸드릭 반 룬’의 영원의 하루는 끝없이 길기만 한데, 한 달보다도 짧게만 느껴지는 한 해를 보내는 송년의 아쉬움은 벅차게 다가오는 새해의 기억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미래는 금세 과거가 된다. 맞바람을 맞으며 범선이 항해하듯, 우리는 이렇게 단 하나뿐인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사랑 믿음 희망에 의존하고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북극해의 거대한 섬들은 신비롭기만 하다. 이 바다에는 거대한 얼음덩이들이 둥둥 떠다닌다. 이런 장관을 구경하기 위해 한 척의 배가 관광객을 태우고 이 근처로 들어왔다. 모두들 얼음덩이의 크기와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때 한 소년이 아버지께 묻는다. “이 큰 얼음산은 모두 이쪽으로 가는데 왜 작은 조각들은 다른 쪽으로 흘러가지요?” 실제로 바다에 떠있는 작은 얼음 조각들은 빙산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들의 주의 깊은 관찰력에 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한다. “큰 빙산은 바다 밑에 더 큰 몸체를 지니고 떠다니기 때문에 바다 깊은 곳에서 흐르는 조류를 따라 흐르게 된단다. 그러나 부스러기 얼음덩어리들은 물 표면의 바람과 출렁이는 물결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란다.”

물 위에 함께 떠있으나 흐르는 방향이 다르다. 이 땅 위에 함께 살고 있으나 가는 곳이 다르다. 바람 불고 물결치는 대로 정함이 없이 부스러기처럼 떠다녀야 하는가? 바닷속 조류를 따라 신조를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파르테논 신전 맞은편에 군사와 지혜를 관장하는 미네르바의 여신상이 있다. 오른손엔 창을 들고 왼쪽 어깨에 온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 큰 부엉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라는 헤겔의 법철학 요강 마지막 문장에서 볼 수도 있다. 이 부엉이는 해질 무렵에 날기 시작해서 시공간에 나타나 보이는 것과 수량화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이론’이라는 둥지에 담는다. 그것들이 모여 ‘논리’라는 체계를 세운다.

영혼은 하나님께 맡겨야

그러나 완전한 것처럼 보이는 그곳 둥지 안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마음, 사랑, 믿음, 꿈, 희망, 영혼, 성령, 하나님.’ 지혜의 부엉이가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 우리는 맑은 물을 마시기 위해 자연 정화능력을 지닌 미생물에 의존하듯 사랑과 믿음과 희망에 의존해야 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식물들의 광합성에 의존하듯 우리 영혼은 하나님 말씀에 의존해야 한다. 양들을 춤추게 하는 예수 사랑 리더십이 충만한 새해가 되길 기도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중략)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장현승 과천소망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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