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두드리면 언젠간 열리지 않겠나 기사의 사진

“나이 많은 아재비가 참는 수밖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의 남북관계 진행 상황을 보면서 생각난 속담이다.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23일 우리 정부의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한 민간 조문 제한 방침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 조치”라고 비난했다. 우리 정부의 조의 표시에 대해서도 “지도자와 주민에 대한 분리 대응을 공공연히 운운하며 공식 애도와 조의 표시를 부정하고 주민들을 위로한다는 식으로 불순한 속심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정부, 큰 결단했는데

이명박 정부로서는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는 내용으로 조의를 표한 것만도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천안함과 연평도 피격 사건 등으로 대북 강경책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의 이번 결정은 그런 변화를 시사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취한 조치들은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다른 고위 관계자도 “천안함 사건 책임자(김정일)의 사망으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인 천안함 사건 등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의사표시다.

그러나 북한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비난이었다. 우리 정부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면서 조문단 파견 등을 둘러싼 우리 내부의 갈등을 부추기겠다는 전략이다. 그렇다고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다. 우리 정부가 그보다 더한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해서 북한이 만족한다고 할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니 넘기는 수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김 사망 이후 우리 보수 쪽의 대북 자세가 많이 유연해졌다는 점이다. 매파가 비둘기파로 변신한 느낌까지 준다.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체제가 안정되도록 도우면서 남북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북한은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아니라는 자신감의 발로? 북한의 정세 불안이나 붕괴가 우리에게 결코 득 될 게 없다는 계산? 그간의 대북 강경책과 남북 긴장 관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깨달음? 차제에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국제사회로 나오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전략?

어느 생각이든 상관없다. 바람직한 일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도 정상회담을 탐색할 정도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해왔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과 같은 악재들이 속출하고, 북한이 적반하장으로 대남 강경책을 고수하고, 그에 따라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악순환을 거듭함으로써 정부는 운신 폭을 극도로 제한받았다. 그러한 정부로서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 대북 유화책을 써도 보수 쪽의 반발이 예전 같진 않을 터이다. 다만, 우리가 호의를 베풀어도 북한은 이번 ‘우리민족끼리’가 보여주듯이 겉으로는 쉽게 다가오지 않으리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그들은 주민들에게 새 지도자 김정은의 권위를 세울 필요가 있고, 벼랑 끝 전술을 써야 얻을 게 더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재비가 참는 수밖에

그러나 북한은 지금 다급한 실정이다. 20대 청년 지도자 체제의 착근을 낙관할 처지가 못 된다. 내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내걸었으나 수백만 명의 주민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을 다시 해야 할 위기 상황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리고 자기들을 도움답게 도울 수 있는 것은 중국과 우리 정도라는 걸 그들도 안다. 우리가 그들의 체면을 사정없이 구기지 않으면서 적당히 달래면 못 이긴 척 대화의 테이블로 나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는 얘기다.

그리고 북한의 리더십 교체기를 맞아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국 등이 접근에 적극성을 띨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정작 한반도 문제의 제1 당사자인 우리가 아웃사이더로 남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할 때 북한이 억지를 부리더라도 우리는 한반도 평화 유지비용으로 생각하고, 또 나이 많은 아재비가 참는다는 심정으로, 최대한 인내하면서 베풀 수 있는 한 베풀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차원을 떠나서라도 굶어 죽어가는 동포를 외면하는 건 차마 못할 노릇이다.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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