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102·끝) 가고 오고 푸르고 시들고 기사의 사진

키 작은 풀들이 자욱한 곳에, 가는 대나무 한 그루 곧게 올라가다 맨 끝에서 왼쪽으로 굽는다. 가지에 매달린 청록 빛깔 잎사귀가 눈이 시리도록 청신하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대라고 하지만, 잎잎이 저리 새뜻하니 대는 본시 풀이로구나 싶다. 이 그림은 말한다. “나를 무엇으로 비유하건 나는 대일 뿐이다.”

대나무 그림의 상징과 함의는 차고 넘친다. 하여도 이 대나무, 식물의 본연이 사뭇 또렷하다. 자연도감에 실려도 모자랄 데 없이 사실적이다. 화본(畵本)에 있기를, 네 잎을 그리면 놀란 까마귀가 날개 퍼덕이듯이, 세 잎을 그리면 낱 ‘개’ 자로 묘사하란다. 이 화가는 도리질한다. 자지러지게 발랄한 댓잎들이 제 신명에 겨워 피어나는데 무슨 소리, 신생의 푸르른 생김새를 구태여 필법에 맡길쏜가.

이 그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조익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려고 두 번이나 직무에서 벗어났지만 그 효성만큼은 나라 안에 자자했다는 조익이다. 그는 기우제 지내고 남은 고기 몇 점을 싸들고 간 뒤 나중에 참회하는 글을 지을 정도로 개결했다. 그의 말이 이랬다. ‘얻어도 되는 것을 얻지 못할지언정 얻어서 안 되는 것을 얻어서는 안 된다.’

풋풋한 신죽(新竹) 곁에 왕대 하나가 담묵으로 그려져 있다. 몸통은 옹글고 마디는 볼록하다. 자잘한 반점까지, 손을 갖다 대보고 싶을 정도로 핍진하게 묘사했다. 자세히 보니 키대로 자라지 못한 채 말라버린 고죽(苦竹)이다. 하필 생기나는 대 옆에 시들어가는 대를 병치한 이유가 무엇일까. 한 해가 저문다. 세월은 가면 오고 오면 간다. 푸르고 시드는 자연이다.

손철주(미술평론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