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끝) 폐허로 버려진 경희궁 기사의 사진

고궁은 서울을 빛내는 보석이다. 시간의 거친 숨결에서 잠시 비껴나 있는 곳, 유장하게 흐르는 역사의 현장, 선현들과 나직이 대화할 수 있는 곳,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이다. 고궁이 있어 서울은 향기롭고, 역사문화도시의 명패를 달 수 있다.

눈 내린 경복궁의 일출과 근정전 월대에 새겨진 토끼상을 출발점 삼아 사계를 지냈다. 봄에는 낙선재의 꽃대궐과 덕수궁의 모란을 사모했고, 여름에는 달빛 부서지는 창덕궁 후원과 덕수궁 등나무 그늘을 즐겼다. 연경당 문살에 새로 입혀진 창호지에서 가을을 보았고, 창경궁 온실에서 겨울을 맞았다.

마지막 발길이 닿은 곳은 경희궁 숭정전. 마른 잔디밭 너머로 버려진 궁궐이 초라한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 ‘서궐’로 불리며 왕조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현장에는 지푸라기만 쓸쓸히 날리고 있다. 실재하는 역사의 현장에 역사박물관을 지은 역설. 폐허가 된 궁궐을 통해 전통의 재발견이라는 연재의 뜻을 되새기려 한다.

손수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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