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송병구] 리나탈리아 선생의 꿈자리 기사의 사진

1월 7일은 러시아의 성탄절이다. 서양에서 1월 6일을 끝으로 성탄절 분위기를 정리하는 것과 참 다르다. 묵은 성탄절로 불리는 1월 6일에 독일은 삼왕절(三王節)을, 영국은 ‘박싱 데이’로 즐긴다. 이날을 기념하는 이유는 동방박사들이 탄생 12일 후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세 박사로 분장한 아이들은 골목골목 다니면서 사탕을 나눠주며 가난한 이웃을 위해 모금을 벌인다. 어쨌든 러시아는 지금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한창이다.

꼭 10년 전 독일 이민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두 주간 동안 러시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고려인이 운영하는 한글학교로부터 목마른 요청을 받았다. 한글교재에 북 꽹과리 장구 같은 악기가 나오는데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어디에서든 구경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간곡한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교회가 전통문화 배달부로 나섰다.

고려인의 꿈을 해산할 빈방은

풍물강습은 시내 ‘151공립학교’에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사물의 낯선 소리가 오죽 시끄러운가? 이튿날부터 주민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아파트 주민들이 교육청에 신고를 하고, 학교까지 찾아와 항의하는 통에 어렵사리 준비한 기회가 하루 만에 중단할 기로에 처했다. 그 반발이 지나쳐 마치 이방인에 대한 텃세처럼 느껴졌다.

리나탈리아 교장 선생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사정하고, 다른 장소로 옮겨보려고 진땀을 흘렸다. 달리 대안이 없어서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학생들을 모아놓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3, 4학년에 불과한 아이들이 해결안을 냈다. “엄마를 데려오자!” 아이들은 서둘러 집으로 뛰어갔고, 10분도 못 되어 마샤, 일리아, 지마가 엄마 손을 붙잡고 달려왔다. 흥분한 러시아 엄마들이 나서서 동네 이웃을 설득하고, 교육청을 방문하고, 아이들도 양해 벽보를 붙이고 다니면서 문제가 감쪽같이 해결됐다. 세상에!

성탄 즈음에 받은 편지는 10년 세월이 흐르도록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속사정을 담고 있었다. 물론 한민족한글학교는 해마다 크게 성장했다. 한글만 배우는 학생이 고려인과 러시아인을 합하여 8개 반, 85명이다. 일주일 내내 수업을 하며 풍물, 우리 춤, 한지공예 등 다양한 문화활동까지 쉴 틈이 없다. 곧 있을 설날 잔치는 고려인들에게 가장 큰 축제로 자리 잡았다. 물론 풍물놀이가 최고 인기상품이란다.

국경 넘어 찾아올 동방박사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수업할 장소였다. 추운 러시아에는 그들을 위한 빈방이 없다. 아기 예수가 몸을 의지한 가난한 구유의 현실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살인적인 물가고는 한글학교를 점점 들판으로 내몰고 있다. 고려인 리나탈리아는 평생 러시아어 교사로 살았지만 우리말은 마흔이 넘어서야 배웠다. 부모는 모국어를 평생 몰라도 될 말로 여겨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녀가 10여년이 훌쩍 넘도록 옛 소련 각처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모여든 고려인 젊은이들을 위해 한글과 문화학교 운영자 노릇을 하는 이유이다.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끝없는 좌절의 역사는 아직 버틸 희망이 있다. 종종 한국인 동방박사들의 관심과 선행 때문이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한국어 소설에 따르면 당시 동방박사들은 구만리 먼 길을 찾아간 고조선 유민이라고 하지 않던가? 상상력이 빚어낸 꿈의 지경은 한없이 넓다. 우리가 나눌 희망의 경계는 국경이 없다. 편지 속 따듯한 러시아말로 새해 인사를 드린다. ‘스 노빔 고돔!’

송병구 색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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