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사회를 재정비하게 하는 힘 기사의 사진

“사회가 어려울때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성찰케하는 텍스트가 우리에게 있는가”

내 서랍 속 장지갑에는 일본 1000엔짜리 지폐 하나가 들어있다. 일본 작가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얼굴이 들어있는 돈이다. 2004년부터는 1000엔권 지폐 인물이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오로 바뀌어 지금은 유통되지 않는 구권(舊券)이다. 소세키는 우리나라의 춘원(春園) 이광수(1892∼1950)보다 앞선 시기의 작가지만 오늘날 읽어도 산뜻한 문장 감각과 구성의 흡인력, 내용의 깊이를 두루 갖춘 작가다.

소세키는 1900년 일본 문부성 제1호 국비유학생으로 런던에 유학 가 쓴 단편 ‘런던탑’에서 말년의 산문집 ‘유리문 안에서’에 이르기까지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국민작가’로 불리고 있지만 그의 작품에 누군가를 계도하려는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회적 모순과 개인의 불안과 같은 작은 단위 속에서 정확하고 유려한 문장이 펼쳐진다.

지금 소세키를 얘기하는 것은 좋은 작가 한 명을 갖는 것이 한 사회에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역사적 전환기 때마다 소세키 문학 붐이 일어난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패배 직후에 일대 소세키 바람이 일었고 1989년의 동구혁명, 1991년 소련 붕괴, 2003년 자위대 이라크 파병문제 등 일본사회가 떠들썩할 때마다 소세키가 다시 조명을 받고 그의 문학전집이 재출간된다. 일본에는 사회가 어려울 때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성찰케 하는 텍스트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반성적 힘을 제공해서 어려울 때 사회를 재정비하게 하는 그리운 텍스트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집권여당의 대표를 지냈고 현재 국회의장직에 있는 사람이 전당대회에서 돈을 돌렸다는 논란으로 한나라당이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대기업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트럭째 받은 것이 들통 나 당사를 천막으로 옮겨가는 난리를 떨었음에도 달라진 무엇이 없어 보인다.

이것은 한국사회 전반의 윤리적 질환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지금 야권에서도 돈 봉투 의혹이 불거져 있지만, 오는 4월 총선거와 연말 대선에서 이런 일이 또 자행될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지금 한국 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을 얻어 21세기 지구촌에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전범(典範)이라고 여길 만한 작품 혹은 캐릭터가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 한류는 오랜 일제식민지와 군사독재를 극복한 사회의 기층에서 발현되는 발랄한 문화현상으로 시작해 경제 한류로 옮겨가고 있지만, 근원적인 힘이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몇 몇 연예기획사에서 혹독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낸 팝과 드라마가 기둥이고 내용은 혼성문화의 짜깁기와 모방의 언저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류가 한 단계 상승하기 위해서는 지구촌 동시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서사(敍事)의 출현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의 중심은 문학의 서사력에 있고, 그런 서사의 출현이 가능한 사회라야 중심이 깊어진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츠메 소세키 등장 이후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기구치 칸(菊池寬),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구메 마사오(久米正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 등을 비롯한 쟁쟁한 작가군이 약 100년간 세계문학에 선풍을 일으킨 일본의 경우가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리 정부는 그런 순수예술의 중요성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은 작가나 화가를 제외한 공연예술인 5만7000명이 산재보험의 혜택을 보는 것으로 국한됐다. 굶어 죽더라도 내색 않는 작가들이기에 망정이지 사회 어느 분야에서도 가능하지 않았을 법 제정이다. 더 차분하고 그윽해져서 심도 있는 서사가 나오고,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경쟁과 물질만이 부추겨지는 사회는 행복해지기 어렵다.

임순만 수석논설위원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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