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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한민수] 여의도에서 살아남기

[데스크시각-한민수] 여의도에서 살아남기 기사의 사진

얼마 전 십수년 이상 오직 국회의원직을 향해 뛴 정치권 ‘절친’ A를 만났다. 술이 얼큰하게 오른 그는 요즘 여의도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4월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에 공천 신청을 해야 할지, 신청하면 공천 받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A는 도대체 어쩌다 여의도가 이렇게까지 돼 버렸느냐고 한탄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을 졸업했고,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여의도에 입성했다. 학생운동도 할 만큼 했고 당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어느덧 불혹(不惑)을 넘겨 40대 중반이 되자 “이제는 우리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고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알았다”는 게 A의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상이 돌변했다. 여의도에 발 한번 디뎌본 적이 없던 분이 수도 서울의 시장이 됐고 그를 시장으로 만든 분은 국민적 지지율 1위를 넘나들고 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 만했다.

20대들이 여의도를 점령해 버린 것이다. 27세의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이준석은 거침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축하 난(蘭)을 치워버렸다는 그는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예비 후보들이 사무실에 난을 많이 보낸다”고 소개했다. 금배지를 노리는 미래의 국회의원들이 20대 비대위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53세의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홈페이지에 자신을 ‘변절자’로 비판한 이 위원을 향해 “아이들까지 정치를 하느냐”고 일갈했지만, 적어도 인터넷에서 전 의원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비대위는 또 총선에서 20∼30대 지역구 공천 비율을 37%까지 확대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인구 비율로 공천하겠다는 얘기로 20대 39명, 30대 51명에 해당하는 파격적인 수치다.

민주통합당에서도 머지않아 20대 국회의원이 무더기로 나오게 생겼다. 25∼35세를 대상으로 ‘슈퍼스타 K’ 방식의 4단계 경선을 통해 남녀 2명씩 뽑아 비례대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순번에 배치하기로 했다. 예정대로 민주당이 젊은 비례대표 의원을 뽑을 경우, 과거에는 거액을 써야 공천을 받을 수 있다던 제1야당 전국구 의원의 대략 4분의 1가량을 ‘2030’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기존 정치인’이 여의도에서 생존하기가 참으로 어렵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시쳇말로 ‘여의도를 떠나 있는 게 여의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기자는 당시 A에게 별다른 위안을 준 것 같지가 않다. “이제 공천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시대는 끝난 거야. 그래도 지역을 훑고 다닌 사람들은 낫지 않겠어?” 정도였다. A와 같은 수많은 여의도 인생들에게 나이를 거꾸로 되돌리라고 할 수도 없고, 지금까지의 이력을 싹 지우고 나타나라고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방법은 뭘까. 일부에서는 작용·반작용 법칙도 내놓는다. 조만간, 아니면 몇 년 후라도 ‘구관이 명관’인 시절이 다시 온다는 것이다. 역시 노련하고 정치권 생리를 잘 아는 여의도 사람들에게 정치를 맡기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는 바람이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를 갖고 살기에는 세상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결국 여의도에서 생존하려면 여의도 방식이 아닌 ‘탈(脫)여의도식’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끊임없이 ‘2030’세대와 소통하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대로 먹고는 사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답이 나온다. 끝으로 사족 하나. 여의도에서 살아남겠다고 돈 봉투 돌리면 패가망신하는 시대도 됐다.

한민수 정치부장 ms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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