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엄상익] 밀실수사 허용한 웃기는 대통령령 기사의 사진

밤늦은 용산경찰서에서 변호사로서 조사에 입회한 적이 있다. 변호사 생활에서 핵심적인 역할의 하나다. 생생한 진실이 무엇인지, 담당형사가 어떤 법의 그물을 씌우려고 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서의 몇 군데를 수정해야겠다고 담당형사와 실랑이를 벌인다. 한 번 잘못된 조서가 꾸며지면 대법원까지도 그걸 번복하기 힘들다. 초동수사를 맡은, 직급이 낮은 형사가 사실상 최고의 권한을 갖는 셈이다.

특히 교통사고의 경우 현장조사를 한 형사의 기록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미란다 원칙이 굳게 지켜진다. 변호사가 와서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 변호사가 옆에서 조사에 참여하면서 견제하는 권한은 민주국가에서는 인권을 위해 중요하다. 감시가 없으면 밀실에서 팰 수도 있고 물고문을 할 수도 있다. 자백은 증거의 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권 조정을 하는 대통령령을 만들면서 독소조항을 슬쩍 끼워 넣었다. 담당형사나 검사가 마음대로 조사에 참여한 변호사를 내쫓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지도록 야합한 것이다. 그 외에도 수사편의를 위해 변호사를 못 오게 한 규정이 많다. 자신들의 권한에 대해서는 으르렁거리면서 인권을 위한 변호사의 참여권은 슬쩍 뭉개버린 것이다. 그런 대통령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변호사와 형사는 껄끄러운 관계였다. 서대문경찰서 형사과로 밤늦게 찾아간 적이 있다. 친구 부인이 이웃집 여자와 싸움을 하고 연행된 것이다. 형사과는 입구가 철창으로 막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아내를 따라간 친구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변호사인 나를 불렀다.

당직반장은 내게 변호사선임계를 요구했다. 한밤중에 서류를 만들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당직반장은 비웃는 표정으로 야유했다. “예전에는 변호사라면 대접을 해줬지만 이제 로스쿨이 생기고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는 시절이 되니까 그렇게 안 되지.” 열등감이 섞인 뒤틀린 말이었다. 요즘 경찰은 검사의 지휘도 조직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판이다.

친구와 함께 송파경찰서로 간 적도 있었다. 담당형사가 나를 보면서 시비조로 내뱉었다. “당신은 공부를 잘해서 변호사가 되고 나는 실력이 없어서 형사가 됐지. 그렇지만 지금부터 조사는 변호사가 없으면 잘 봐줄 것이고 변호사가 있으면 나쁘게 조서를 꾸밀 건데 어떻게 할지는 알아서 하쇼.” 형사의 콤플렉스가 그대로 나타났다.

물론 좋은 형사들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삐딱한 소수의 ‘완장’이 끼치는 해악은 무시할 수 없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그랬고 부천서의 형사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사받는 여자를 성고문하기도 했었다.

우리 헌법에는 국민은 언제든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법은 조사를 받을 때 변호사의 참여를 보장한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현실에서 그런 법원칙들을 대통령령으로 깔아뭉갰다. 이제 우리에겐 미란다 원칙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인권침해의 독소조항을 끼워 넣으면서 검찰과 경찰은 정작 당사자인 대한변협을 속인 것이다. 대한변협 신영무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밀실수사가 합법적으로 부활했다. 유신독재 시절에도 이런 대통령령은 없었다”며 분노했다. 독소조항의 피해는 돈 없고 백 없는 약한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변호사들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다. 일부 악덕 변호사들 탓이다. 그들은 조사에 참여해 인권을 지켜주는 것도 귀찮아한다. 그러나 사건현장에서 몸으로 싸우는 인권 변호사들이 더 많다. 조영래 박원순 변호사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세상에 고발했다. 김근태씨의 고문을 세상에 알린 것도 변호사다. 노동현장에서 경찰의 방패에 찍히고 군홧발에 차이면서도 싸우는 변호사들도 아직 존재한다. 노무현 변호사는 그런 활동 속에서 대통령까지 됐다. 변호사가 조사에 참여해 감시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법치주의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국가는 민주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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