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 전집 간행위원회 대표 맡은 원로작가 남정현 “선생님의 죽음은 문학을 위한 순절이었지요” 기사의 사진

‘북간도’의 소설가 남석(南石) 안수길(1911∼1977) 전집(전16권·글누림출판사)이 사후 35년 만에 출간됐다. 지난해 안수길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전집은 ‘북간도’와 ‘제2의 청춘’ ‘부교’ 등 장편소설은 물론 ‘제3인간형’을 비롯한 중·단편 소설, 수필과 단평 등 그의 작품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망라됐다.

13일 서울 예장동 ‘문학의집·서울’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원로작가 남정현(79·사진)씨는 “안 선생님은 66세에 작고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의 죽음은 문학을 위한 순절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안수길 문학은 북한산으로 말하면 인수봉처럼 우뚝 선 봉우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50년대 말 안수길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온 인연으로 전집간행위원회 대표를 맡게 됐다는 그는 “안 선생님은 작가와 문학을 별개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셨다. 평생 세속적인 이해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올곧은 문학정신 하나에 의존해 오로지 문학을 위해 몸을 바친 분”이라며 회한에 잠겼다.

“작가가 진실하면 작품도 진실하다는 게 평소 지론이셨지요. 그만큼 작품에 대한 엄격성을 강조하신 것이죠. 세속에 물들지 말 것, 경망한 풍조에 영합하지 말 것을 늘 주문했지요. 문학단체의 그 흔한 직책 하나 맡지 않고 오로지 붓대 하나에 의지해 살았던 진정한 문학인이었습니다.”

그는 “안수길 선생은 간도 체험을 소설로 형상화해 한국문학사에 굳건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가지만 선생의 작품세계를 간도문학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특히 해방 후 남한에 정착해 당대의 삶과 일상을 세심한 필치로 묘사한 장편들은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라고 말했다.

“안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우리말 우리글 사용이 전면 금지됐던 1943년 만주에서 첫 창작집 ‘북원(北原)’을 간행했지요. 일제에 의해 모국어가 숨을 거두었던 시대에 선생님은 한글 창작집으로 한국문학사의 단절을 막아낸 분입니다.”

당시 한글 문학 작품으로는 만주에서 간행된 재만조선인작품집 ‘싹트는 대지’(1941), ‘재만조선인시집’(1942)이 있었으나 문학인의 개인 창작집은 ‘북원’이 유일하다. 특히 1959년부터 ‘사상계’에 발표한 장편 ‘북간도’는 한국 최초의 5부작 대하소설로, 일찍이 국제펜클럽한국본부는 이 작품을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1965년 소설 ‘분지’ 필화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남 작가는 안수길 문학의 적자(嫡子)로 평가받는다. “소설가 최인훈, 박용숙, 오상원 등과 어울려 가끔 서울 종암동 산동네에 있는 선생님 자택을 찾아갔었지요. 아주 초라한 집이었어요. 그런 집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3남2녀를 훌륭하게 교육시켰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사모님이 곁에서 지극정성을 다해 건강을 지켜드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선생님의 작품엔 사모님의 그런 정성도 얼마만큼 스며 있는 것이죠.”

그는 “현기증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 정작 전집 발간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며 “실질적인 주역은 강진호, 김준현, 이광복, 이남호, 채호석 등 편집위원들”이라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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